북청군의 연혁

북청군의 연혁

의 영토였다가 후에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고구려가 망하자 의 영토가 되었으며 발해가 망하자 이 지역은 오랫동안 의 거주지가 되었다. 1073년(고려 문종 27) 고려의 영토가 되었으나 의 침입 이후 이곳을 원(元)이 차지하여 삼살(三撒)이라 하였다.

1356년(고려 공민왕 5) 원나라의 세력이 쇠퇴하자 이곳을 수복하여 안북천호방어소(安北千戶防禦所)를 설치하였다. 그후 북청주(北靑州)라 개칭하고, (按撫使) 겸 만호(萬戶)를 두었다가 다시 청주(靑州)라 개칭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충청도 청주(淸州)와 발음이 같다 하여 1417년(태종 17) 다시 북청이라 하였다. 세종 때 가 되었고 세조 때 진(鎭)을 두었으며 (李施愛)의 난 이후 부(府)가 되었다. 1895년(고종 32) 군(郡)이 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 당시 안산면(安山面)과 평포면(平浦面)이 풍산군과 홍원군에 이관되고, 홍원군 용원면(龍源面)의 일부가 편입되었다. 8·15광복 전에는 북청·신포·신창의 3개읍과 양화(陽化)·속후(俗厚)·거산(居山)·신북청(新北靑)·후창(厚昌)·가회(佳會)·덕성(德城)·상거서(上車書)·하거서(下車書)·이곡(泥谷)·성대(星岱)의 11개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952년 12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북청읍·가회면·후창면과 속후면의 1개리, 신북청면의 5개리, 덕성면 동장내리 일부가 남고 나머지 지역은 신설된 신포군·덕성군·신창군 등에 편입되었다. 1974년 1월 신창군이 폐지되면서 신창읍과 17개리가 북청군에 편입되었다.

관할 행정구역은 북청읍과 신북청·신창 등 2개 노동자구, 서리·죽상리·중평리·청흥리·장항리·양가리(량가리)·안곡리·신상리·용전리(룡전리)·당우리·지만리·문동리·부동리·오평리·종산리·초리·마산리·중리·봉의리·나흥리(라흥리) ·나하대리(라하대리)·만춘리·덕음리·예승리·청해리·토성리·경안대리·양천동리·양천서리·동도리·하호리·보천리·평리·하세동리·상세동리·상립석리·반송리·건자리 등 38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군소재지는 북청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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