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주군의 연혁

삭주군의 연혁

삭주군은 을 거쳐 때에는 서경(西京) 압록부에 속하던 땅이었는데 발해의 멸망 후에는 한동안 거란 ·의 근거지가 되였다. 그 후 고려시대에 와서는 건국초부터 북진정책을 수립하여 평북 ·평남 전역에 이르는 많은 영토를 수복하였다.
이 지역은 본래 영새현(寧塞縣)이라 하였는데, 1018년(현종 9) 삭주로 개칭되어 방어사(防禦使)가 주재하였다가 후에 부(府)로 승격되었다. 이곳에 방어사를 둔 것은 진을 설치하여 거란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거란과의 3차에 걸친 전쟁을 치른 후 삭주를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에 천리장성을 축조하여 북방이민족들의 침입을 막아 국토방위를 꾀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1394년(태조 3) 고구주(古龜州)와 부근의 12개 촌(村)을 합하여 군으로 강등되어 설치되었고, 1413년(태종 13) (都護府)로 승격되었다. 30년(세종 21) 다시 군이 되었으며, 이듬해에 도호부로 승격되었고, 67년(세조 12) 소삭주(小朔州)로 이읍(移邑)되어 진(鎭)이 설치되었다.
1895년(고종 32) 군이 설치되어 오늘에 이르렀으며, 1944년 청수읍(靑水邑)이 설치되었다. 청수읍, 삭주 ·구곡(九曲) ·남서(南西) ·외남(外南) ·수동(水東) ·양산(兩山) ·수풍(水豊)면 등 1읍 7개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1952년 12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서면 ·외남면 ·양산면과 수동면 일부 지역이 대관군으로 갈라져 나가고, 청수읍이 청성군으로 승격되었다. 따라서 삭주군은 구곡면 ·삭주면 ·수풍면과 창성군의 창성면 일부 지역과 합쳐서 이루어졌다. 1974년 5월 폐지된 창성군의 일부 지역이 삭주군에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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