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군의 연혁

영변군의 연혁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천왕(桓雄天王)이 세운 (神市)가 있었던 것으로 전하는 곳이며 고조선 단군시대의 (王儉城)으로도 알려진 곳이다. 한사군 때에는 낙랑군 관하의 패수현(浿水縣)이었다가 209년(고구려 산상왕 13) 다시 환도성(丸都城)이라 하여 도읍지가 되었다.

·거란·여진의 통치를 거쳐 947년(고려 정종 2) 비로소 고려의 판도로 확정된 후 위주(渭州)·무주(撫州)·연주(延州) 등 3현으로 정립되었다가 위주를 폐지하고 무산현(撫山縣)과 연산부(延山府)로 양분되었다. 1419년(세종 11) 무산·연산을 합하여 영변으로 개칭하고 영변대도호부로 승격시켜 약산성(藥山城)에 를 두었다. 세조 때에 연주(延州)를 나누어 에 속하게 하였고 그 후 여러 차례 변천이 있은 뒤 1895년 영변군으로 개편되었다.

8·15광복 전에는 영변면·오리면(梧里面)·연산면 (延山面)·독산면 (獨山面)·소림면(少林面)·팔원면(八院面)·봉산면(鳳山面)·고성면(古城面)·남신현면(南薪峴面)·남송면(南松面)·태평면(泰平面)·북신현면(北薪峴面)·용산면(龍山面)·백령면(百嶺面) 등 14개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952년 12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용산면·백령면·남신현면과 오리면의 4개리, 고성면의 3개리는 신설된 구장군에, 태평면·북신현면과 남송면의 11개리는 향산군에, 독산면은 박천군에, 연산면의 1개리는 평안남도 개천군에 이관되었고 나머지 영변면·팔원면·소림면·봉산면과 연산면 13개리, 고성면 10개리, 오리면 13개리로 영변군을 이루었다.

1954년 10월 용흥리는 에, 삼봉리는 구장군에, 상추리와 서위리 일부는 박천군에 이관되었다. 1967년 10월, 1969년 4월, 1972년 11월 일부 리를 통합하여 노동자구를 신설하는 등 행정구역 개편이 있었다.

관할 행정구역은 영변읍과 팔원노동자구, 용포리(룡포리)·서산리·동남리·오봉리·송강리·세죽리·서화리·대천리·연화리·용화리(룡화리)·서위리·남등리·화평리·송화리·용추리(룡추리)·관하리·고성리·봉산리·구산리·망일리·명덕리·옥창리·용성리(룡성리)·하초리·남산리·구항리 등 1개읍 1개 노동자구 26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군소재지는 영변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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