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군의 연혁

의주군의 연혁

본래 고구려의 옛땅이었으나 당(唐) ·발해(渤海) ·거란(契丹)의 영토로 변천하다가 고려에 들어와 993년(성종 12) 제1차 거란침입 때 (徐熙)의 외교로 고려의 영토로서 수복하고, 군의 동부에 흥화진(興化鎭)을 두고 용만현(龍灣縣) 또는 화의현(和議縣)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거란은 그 후에도 압록강 동쪽 연안에 보주성(保州城)을 두고 포주(抱州)라고 불렀다.
1117년(예종 12)에 요(遼)나라의 자사(刺使) 상효손(常孝孫)과 도통(都統) 야율녕(耶律寧) 등이 금병(金兵)을 피하여 의주의 영덕성(寧德城)으로 귀순하면서 내원성(來遠城)과 포주를 고려에 환부함으로써 압록강구가 비로소 고려 땅으로 확정되었고, 의주방어사(義州防禦使)를 두었다.
1269년(원종 10) 서북면(西北面) 병마사영기관(兵馬使營記官)이 원(元)나라에 항복하면서 60여 성(城)을 헌납하여 다시 원의 (東寧部)에 속하였다. 그 후 11290년(충렬왕 16)에 회복하고, 1369년(공민왕 18)에 만호부(萬戶府)를 두고, 좌정(左精) ·우정(右精) ·충신(忠信) ·의용(義勇)의 4군을 설치, 주둔시켰다.
조선에 들어와 1402년(태종 2)에 판관(判官)을 처음 두고, 정주(靜州)와 위화진(威化鎭)을 합하였으며, 세조(世祖) 때에는 진(鎭)을 두고, 북변 수비의 요지로 삼는 한편 중국에 대한 문호역할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전국 행정구획 변경 때 3부(府)의 하나가 되고, 그 이듬해 평북 도청소재지를 겸한 군이 되었다.
그 후 평북 청이 신의주로 이전, 1944년 5월에 청수동(靑水洞)이 삭주군으로 이관되었다.
1952년 12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의주군 고성면 ·송장면 ·수진면 ·위화면 전역과 고관면의 5개리, 신의주시의 1개리로 이루어졌다. 1974년 5월 창성군이 없어지면서 창성군 수리 ·상하리가 의주군에 편입되었다. 1993년 현재 1개읍(의주) 17개리 2개 노동자구로 이루어져 있다.

참조항목

, ,

카테고리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