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의 역사

르완다의 역사

르완다 지역은 14세기경 북방에서 이주해온 투치족(族)이 주변의 바후투족을 병합, 부근의 다른 투치족과 싸움을 계속하면서 왕국을 세웠으나, 유럽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94년 의 G.괴첸이 이 지역을 답사한 후이다. 1895년부터 부룬디와 함께 독일의 지배를 받았으며, 1897년 독일보호령이 되었다. 1916년 콩고를 거점으로 한 군(軍)이 키갈리를 점령함으로써 1919년에는 벨기에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1925년 통치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국왕 및 에 의한 전통적 지배체제가 근대화되었고, 1930년에는 식민지로서의 정치체제는 물론 교육시설의 정비가 이루어졌다.

후인 1946년에는 벨기에의 령으로 바뀌었고, 1956년 선거제도가 도입되어 지방평의회(地方評議會)가 설치되고, 뒤이어 부총독의 자문위원회가 전국평의회로 개혁되었다. 1959년에 바후투족의 반(反)투치족 폭동이 일어나 므와미 체제가 붕괴되고, 16세기부터 지배층을 형성해온 투치족 중에서 약 8만 명이 국외로 밀려났으며, 마지막 군주인 키게리 1세도 망명하였다.

1961년 6월, UN(United Nations:) 신탁통치이사회의 감시로 실시된 주민투표와 총선거에서 바후투족의 정당인 공화민주운동당(MDR)이 승리하였으며, 그해 1월 선언되었던 가 확인되고 MDR이 자치정부를 수립하였다. 이러한 현실은 그해 10월 벨기에의 승인을 받았으며, 1962년 1월 1일 정식으로 내정자치가 허용되었다. 1962년 4월에는 부룬디와 · 동맹을 맺고, UN 결의로 신탁통치협정이 끝났으며, 7월 1일에는 르완다공화국으로 독립, MDR의 당수 그레구아르 카이반다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벨기에로부터 독립하기 3년 전인 1959년 다수 종족인 후투족이 투치족 왕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했다. 1965년 후투계 1당 독재가 시작되었고, 이 후 수년에 걸쳐 수천 명의 투치족이 학살되었고, 15만 명 이상의 투치계 주민이 주변 국가로 피난해야만 했다. 그들은 르완다 애국 전선(RPF; Rwandan Patriotic Front)을 결성하고 1990년 내전을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 벨기에, 자이르는 후투계 르완다 정부를 지원했다. 1994년 4월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의 탑승기가 피격 당해 대통령이 사망하자 이 후 3개월간 후투계 정권은 80만 명에 달하는 투치 및 온건 후투족을 학살하였다. 그러나 우간다 등에 피신해 있던 투치계 RPF가 후투 정권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1994년 7월 마침내 정권을 쟁취했다. 이에 약 200만 명의 후투족은 투치족의 보복 살인을 두려워해 부룬디, 탄자니아, 우간다, 자이르 등 주변국으로 피난을 떠났다. 이후 대부분의 후투족은 르완다로 귀환했지만 수천 명은 여전히 자이르에 남아 반군을 조직하여 르완다 정부에 맞서고 있다.

참조항목

, , , , ,

카테고리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