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부티의 역사

지부티의 역사

BC 3세기경 아파르족(族)의 선조인 아블레 이민들이 아라비아로부터 들어와 주로 북부에 정착하였으며, 그후 소말리계의 이사족이 남부에 일부 살고 있던 아파르족을 축출하고 정착하였다. 825년에 가 전파되었고, 16세기까지 아랍인(人)들이 지역상권을 장악하였다. 1840년 영국이 현재의 소말리아 북부 지역을 차지하고, 1880년에는 가 의 일부, 에리트레아의 일부, 소말리아 남부를 합쳐 식민지로 하였으며, 프랑스는 1862년에 지부티의 북쪽을 시작으로 차차 지배지역을 넓혀, 1896년에는 그 지역을 프랑스령(領) 소말릴란드로 명명하고 총독을 파견하여 통치하였다.

20세기 초까지 총독정치가 계속되다가 후인 1946년 프랑스령 소말릴란드는 프랑스의 해외영토로 편입되었으며, 그뒤 서서히 자치권을 부여하며 자치정부에 의한 시정이 행하여졌다. 드골 대통령 시대에 들어서자 1958년 9월 독립이냐 프랑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남아 있느냐에 대한 찬부를 묻는 국민투표 결과 국민의 75%가 후자를 택하여 프랑스 해외영토에 편입된 채로 남았다. 1967년 3월의 국민투표에서도 주민의 65%가 현상유지에 찬성하였다. 그러나 아프리카 각지에서 독립이 추진됨에 따라 자치정부도 프랑스와 독립 교섭을 시작하여 프랑스는 1975년 12월 독립을 인정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리하여 1977년 5월 세 번째 국민투표 결과 이번에는 98.7%가 독립에 찬성함으로써 그해 6월 지부티공화국은 아프리카에서 50번째의 독립국이 되었고 초대대통령으로 이사족 출신의 하산 굴리드 압티돈이 취임하였다.

독립 1년 후인 1978년에는 과거 2년간 오가덴분쟁으로 단절되었던 지부티시(市)∼아디스아바바(에티오피아의 수도)간 철도가 재개되는 한편, 정부는 프랑스와의 사이에 우호협력협정, 경제협력협정, 잠정군사협정 등 7개의 협정을 체결하여 프랑스의 협력 아래 각종 계획을 추진하였다. 1980년대 초에는 아파르족(族)과 이사족 사이에 긴장상태가 조성되었으며, 1993년 5월에 실시한 선거에서 하산 굴리드 압티돈 대통령이 4선에 성공하여 다당제하의 탈(脫)부족정책을 폈다. 1994년 6월 수도인 지부티시 시내에서 다시 아파르계 세력과 정부군이 충돌하였으나 몇 달 후 양측의 평화합의가 이루어졌다. 1999년 4월에는 이스마엘 오마르 굴레(Ismael Omar Guelleh)가 대통령에 취임하였고, 2001년 5월에 정부와 무장 아파르족 사이에 최종 평화안이 합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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