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

[ Eriugena ]

요약 아일랜드 출신의 중세 학자로 스콜라 철학의 시조로 여겨진다. 실재론과 신플라톤주의와 연관된 사상을 펼쳤다. 프랑스 파리 궁정학교의 교수였으며 많은 고대 그리스어 작품들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고대 철학 사상을 중세에 들여오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저서와 사상이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나 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비난받았다.
원어명 Johannes Scotus Eriugena
출생-사망 810? ~ 877?
별칭 요하네스 스코투스(Johannes Scotus:라틴명)
활동분야 종교, 철학
출생지 아일랜드
주요저서 《자연의 구분에 대하여(De divisione naturae, Periphyseon)》

스콜라 철학의 시조라 불리는 중세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다. 실재론자이자 신플라톤주의 사상가로 여겨진다. 라틴명은 요하네스 스코투스(Johannes Scotus)이나 그의 고향인 아일랜드를 지칭하는 켈트어 ‘에리우(eriu)' 사용하여 에리우게나(Eriugena)로 일반적으로 불린다. (Thomas Aquinas, 1225?~1274)를 비롯한 수많은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810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으나 서른 중반 무렵 프랑스로 이주했다. 유럽 본토의 몇 되지 않는 그리스어에 능통한 학자였던 에리우게나는 (Charles the Bald, 823~877)의 초청으로 파리 왕립 학교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높은 학식과 뛰어난 지도력으로 에리우게나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져 갔다.프랑스에서 머무는 동안 그는 특히 그리스어로 작성된 고대 학자들의 작품을 로 번역하는 작업을 많이 했다. 이러한 번역 활동은 고대 철학이 중세로 이어지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비잔틴 황제 미카엘 3세(Michael III, 840~867)의 요청으로 기독교 신비주의 철학자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사이비 디오니시우스, Dionysius Areopagita, ?~?)의 작품을 번역하고 주석을 달기도 하였다. 비잔틴에서 활동했다고 추측되는 미지의 인물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의 작품에 담긴 신플라톤주의적인 경향은 에리우게나의 번역을과 해석을 통하여 이후 중세 교회와 사상에 스며들었다.

에리우게나는 스콜라 철학의 바탕이 되는 논리인 ‘종교는 철학에 의해서 이해될 수 있고 참된 종교는 참된 철학과 같은 것이다’라는 논리를 펼친 최초의 학자였다. 스콜라 철학의 원형이 되는 사상을 보여준 에리우게나는 ‘스콜라 철학의 카롤루스 대제’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또한 그는 보편적인 이념으로부터 개별적인 존재들이 생겨난다고 보는 실재론자였다. 에리우게나의 보편에 대한 강조는 이후 중세 초기 스콜라 철학에서 주류로 통했던 실재론자들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그는 교회로부터 수차례 이단으로 비난당했으며 저서들이 불태워지기도 했다. 기존 교회 관계자들을 비롯한 당대인들이 이성의 역할을 강조하고 철학을 통해 신학을 증명하고자 했던 그의 논리를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더욱이 교황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번역한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의 작품들과 에리우게나 자신의 저작 《자연의 구분에 대하여(De divisione naturae, Periphyseon)》에서 드러난 신플라톤주의 경향은 에리우게나를 궁지로 몰았다. 에리우게나는 성만찬과 예정론 논쟁에도 참여하였는데 이 또한 교회의 질타를 받았다.

에리우게나는 왕립학교의 교수로서 프랑스에서 수년간 머물렀다고 알려지는데 그 이후의 삶의 행적은 불분명하다. 잉글랜드의 대왕(Alfred the Great, 849~899)의 부탁으로 잉글랜드로 건너갔다가 그의 의견에 반하는 제자들에 의해 날카로운 펜으로 살해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일부 학자들은 그가 계속해서 프랑스에 머물렀다고 보기도 한다. 대략 877년경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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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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