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청자

순청자

[ 純靑磁 ]

요약 고려 때 만들어진 문양이나 장식이 없는 소문(素紋)의 청자.

대체로 ·양각··철화(鐵畵)·첩화(貼畵) 등의 장식 무늬가 없는 소문청자와 동물·식물 등을 모방해 만든 상형청자가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유태(釉胎)가 양질이고 은은한 비색(翡色)에 가까워 빚은 모양 그대로 자연스럽고 귀족적 멋이 나는 11세기 후반부터 12세기 초의 청자에만 붙이는 이름이다.

9세기 중엽의 청자는 대부분 소문청자였다. 색은 황갈색과 녹갈색으로 유층이 얇고 불안정하며 망상균열(網狀龜裂)이 있는 초보적인 단계였는데 점차 회청색의 밝은 비색으로 발전하였다. 10세기 후반에는 불순물이 없는 양질의 유태가 나타나는 순청자의 수준에 이르렀고 11~12세기에는 속에 작은 기포가 형성되어 반투명하며 유약과 바탕흙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비취색이라 불리는 청록색을 띠게 되었다.

국보 제94호인 청자소문과형병(靑磁素紋瓜形甁)을 비롯해 인종의 장릉(長陵)에서 출토된 유물은 순청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유층이 비교적 두껍고 전면에 미세한 기포가 있어 반투명하게 보이며 균열이 없어 단아한 아름다움이 있다. 대부분의 순청자가 단정하고 뛰어난 균형미를 보인다.

1123년(인종 1) 나라의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徐兢)은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도기의 색은 푸른데 고려인은 비색이라 부른다”라고 하며 순청자의 아름다움을 칭찬했다. 또 북송의 학자인 태평노인(太平老人)은 《수중금(袖中錦)》에서 “청자만은 중국의 많은 명요(名窯)산 청자를 빼놓고 외국산인 고려의 비색청자를 천하제일로 꼽았다 ”라고 기록하였다.

순청자는 12세기 중반부터 유행한 상감기법 때문에 점차 퇴조하였고 장식적인 조형미가 돋보이는 가 발달하게 되어 13세기부터 그 특징을 잃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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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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