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정치

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정치

구유고슬라비아는 노동자에 의한 기업의 자주관리와 6개 공화국의 대폭적인 자치권을 축으로 한 유고형 와 를 기조로 하여왔다. 1980년 종신 대통령이었던 티토가 사망함으로써 집단지도체제로 바뀌었다. 1990년 5월 슬로베니아에서 비공산정권이 발족하고, 6월에는 크로아티아에서 비공산 정권이 탄생하여 연방으로부터의 이탈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두 공화국의 연방으로부터의 이탈은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연방 내에서 가장 선진공화국으로, 남부의 각 공화국에 대한 경제적 부담에 대하여 불만이 컸을 뿐만 아니라 연방 내 최대 공화국인 세르비아 공화국과는 민족대립이 강하였기 때문이었다.

1991년 6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양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하자, 연방군은 무력으로 저지하려고 하였다. 슬로베니아 방위대 간에 무력 충돌이 있었고, 크로아티아에는 연방군이 본격적으로 개입하여 이 발발하였다. 여기에 9월에는 마케도니아가 국민투표를 통하여 독립을 선언하자 세르비아는 12월 신유고 연방의 건설을 선언하고, 1992년 1월 신유고 연방 결성대회를 가졌다. 3월 몬테네그로가 국민투표에서 신유고 연방 참여를 지지하였으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독립을 선언하였다. 4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양 공화국은 신헌법을 채택하고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을 창설하였다. 그러나 5월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는 신유고에 대하여 전면 금수제재를 결의하고 9월 UN 총회에서 유고 추방이 결의되었다. 한편, 알바니아계가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코소보자치주에서는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가 대립하여 폭동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1999년 3월에는 NATO(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의 공중폭격이 실시되었고 6월에 유고슬라비아가 평화안을 받아들여 공중폭격이 중지되었다.

유고슬라비아의 국가원수는 연방의회에서 선출되는 임기 4년의 연방대통령으로, 1990년 처음으로 복수정당제에 의한 선거를 실시하여 민족주의색이 강한 세르비아 사회당을 중심으로 연립 정권을 구성하였고 밀로셰비치가 실권을 잡아왔다. 2000년 9월 실시된 대선·총선에서 개혁파인 코슈투니차가 당시 대통령 밀로셰비치를 꺾고 10월에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국제사회의 강한 요구로 밀로셰비치는 2001년 6월 코소보와 크로아티아 전쟁범죄를 주도하고 보스니아내전 당시 집단학살을 주도한 혐의로 국제전범재판소에 이송되었다.

내각의 수반인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지명하며 의회가 승인한다. 의회는 상·하 이며 연방원은 138석, 공화국원은 50석으로 이루어진다. 주요 정당으로는 세르비아 최대 정당인 세르비아사회당 외에 세르비아급진당·세르비아재생운동·고소보민주동맹·몬테네그로민주사회당·몬테네그로민주행동 등을 들 수 있다. 군사면에서는 비동맹 중립노선을 취하고 있으며 징병기간은 12개월이다. 국방예산은 1998년 현재 국방비의 규모는 (GDP)의 6%이며, 병력은 육군 9만 명, 해군 7200명, 공군 670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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