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회

마리아회

[ Society of Mary(Mrianist) ]

요약 1817년 샤미나드 신부가 개인의 성화(聖化)와 세계의 복음화를 위해 프랑스 보르도에서 설립한 수도회.
원어명 Sociètède Marie(S.M.)
설립일 1817년
설립목적 개인의 성화(聖化)와 세계의 복음화
소재지 본부 이탈리아 로마, 한국지부 서울 마포구 망원1동 403-2
규모 에스파냐ㆍ이탈리아ㆍ한국 등 32개국에서 활동 중인 수도자 2,000여 명

마리아니스트(Marianist)라고도 불린다. 마리아회(Society of Mary)는 1817년 10월 2일 윌리암 요셉 샤미나드(William Joseph Chaminade, 1761~1850) 신부에 의하여 창설된 수도회이다. 창립자인 샤미나드 신부는 1761년 4월 8일 프랑스 페리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신부인 큰형 장 샤미나드의 영향을 받아 1784년 사제 을 받았다. 1782년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사제로 서품된 후 고향인 페리구 교구의 작은 도시인 뮤시당(Mussidan)에 돌아와 사제로서의 직무를 수행하였다.

1789년 이 일어나자 당시 권력자들에게 밀착되어 부패가 극심했던 성직자들은 숙청대상으로 지목되어 박해를 받았다. 성직자들이 체포되는 등 사회가 어수선해지자 샤미나드는 1797년 스페인의 로 망명하였다. 망명기간 중 사라고사에 있는 필 라르의 성모(Our Lady of Pillar) 성당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마리아의 이름으로, 마리아를 통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마리아의 이름으로 단체를 창립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고 1800년 혁명이 끝나자마자 귀국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

샤미나드 신부는 1802년 12월 8일 보르도(Bordeaux)에서 ‘마리아 심신회’를 조직하였다. 마리아 심신회는 조직 내에 신분·나이·성별에 따른 차별을 두지 않았으며 교육, 자선 사업, 불우 청소년 돕기, 교도소 방문, 양서 보급 운동 등 다양하고 순수한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프랑스 전역에서 마리아 심신회가 큰 성공을 거두자 샤미나드 신부는 남녀 수도회의 설립을 추진하며 1817년 10월 12일에 보르도에서 마리아회를 설립하였다. 마리아회는 수도회의 설립 목적을 "우리의 목적은 그분을 똑같이 닮고 그 나라가 임하도록 일하는 데 있다"(규칙 1장 2조)라고 명시하였다. 사회의 모든 악은 인간의 영혼을 마비시켜 무감각한 이기심을 갖게 하며, 윤리적인 타락 상태로 몰고 가는 ‘종교적 무관심’에서 비롯된다고 하는 창립자의 가르침에 따라 회원들은 ‘마리아 선교사’로서 생활한다.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께로 나아가기 위해 회원들은 마리아의 겸손과 믿음, 청빈과 단순성, 그리고 신중성을 본받아 세상의 구원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마리아회는 1950년대 말 광주 대교구 헨리(Henry) 의 요청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진출하게 되었다. 1963년 2월 목포에 수도원을 마련하여 입주하였으며, 1970년에 서울에도 수도원을 마련하였다. 1984년 10월 2일 인천시 산곡동에 지상 4층, 지하 1층, 건평 1,040평의 ‘샤미나드 피정의 집’을 완공하였다. 1991년 11월에는 서울 망원동에 ‘마리아 가족 회관’을 건립하여 마리아니스트 평신도 공동체의 모임이나 1일 피정 등을 실시하고 있다.

사도직 활동으로는 1975년 3월 목포 마리아 고등학교를 설립하여 1996년 현재까지 7,0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96년 5월 현재 종신 서원자 17명(사제 2, 수사 15), 유기 서원자 6명, 지원자 3명 등 모두 26명의 회원이 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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