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티노 1세

마르티노 1세

[ Martinus ]

요약 7세기 로마 교회의 교황으로, 교황이 되었으나 황제의 승인을 요청하지 않아 합법적인 교황이 되지 못했다. 라테란에서 교회회의를 소집하여 단의설(單意說)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인 콘스탄스 2세의 탄압을 받았으며 콘스탄티노플로 압송되었다가 유배되어 죽었다. (재위 649~653)
출생-사망 ? ~ 655
국적/왕조 이탈리아
재위기간 649년 ~ 653년
활동분야 가톨릭의 성인·교황
출생지 이탈리아 토디(Todi)

축일은 4월 13일이다. 이탈리아 토스카나(Toscana)의 토디(Todi)에서 태어나 649년 5월 14일 교황 가 사망한 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당시에는 교황이 선출되면 황제의 승인을 받는 것이 관례였는데, 마르티노 1세는 승인을 요청하지 않았다. 이는 종교문제에 관해 황제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결국 황제는 마르티노 1세를 합법적인 교황으로 인정하지 않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마르티노 1세는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 해결해야 할 최우선적인 문제가 단의설(單意說, Monotheletismus)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교황직에 오른지 3개월 만에 로마의 에서 교회 회의를 소집하였다. 5차에 걸친 회의는 황제(재위 610~641)가 638년 칙령으로 반포한 ‘엑테시스(Ecthesis)’와 콘스탄스 2세가 648년에 반포한 ‘티포스(Typos)’를 거부하고, 단의설(單意說)을 이단(異端)으로 선언하였다.

마르티노 1세는 아프리카, 영국, 스페인의 주교들에게는 지지를 받았으나, 데살로니카의 주교 바울로는 라테란 교회회의의 결정을 거부하였다. 황제 역시 자신의 종교 정책에 도전을 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즉시 교황을 체포하여 콘스탄티노플로 압송하도록 했다. 마르티노 교황은 자신으로 인해 대중이 피해를 받을까 염려하여 황제에게 간다고 선포하였다. 653년 6월 19일 로마를 출발한 마르티노 1세는 653년 9월 17일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하여 93일 동안 잔혹한 대우를 받다가 654년 3월 26일 크리미아(Crimea)의 케르소네수스(Chersonesus)로 유배되었다. 마르티노 1세는 그곳에서 655년 9월 16일 사망하였으며, 근처 블라케르마이(Blachermae)라고 불리는 성당에 매장되었다가 후에 로마의 성 마르티노 성당으로 이장되었다. 로마 교회는 그를 순교자로 공경하였고, 8세기에 보비오(Bobbio)의 미사 경본에 이름이 올랐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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