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시앵 리우빌

뤼시앵 리우빌

요약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한국명 유달영. 1880년 한국에 건너와 황해도에서 전교 활동을 시작했다. 다음 해 전라도 지역에 파견되어 약 6년간 활동하며 2,000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1887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초대 교장에 임명되었다.
원어명 Lucien Nicolas Anatole Liouville
출생-사망 1855 ~ 1898
별칭 세례명 아나톨, 한국명 유달영(柳達榮)
활동분야 가톨릭 선교사
출생지 프랑스 비뇨(Vignot)

세례명은 아나톨이다. 1855년 1월 7일에 프랑스 베르뒨(Verdun) 교구 콤메르시 부근의 비뇨(Vignot) 지방에서 태어나, 오트 마른의 생 디지에(Saint-Dizier) 성당 부설 중학교에서 고전을 공부하였으며 1874년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878년 3월 16일 사제로 (敍品)된 뒤 한국 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프랑스를 출발하기 직전에 리델(Ridel) 신부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 있고, 다른 선교사들의 신변도 위험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리우빌 신부는 곧바로 조선에 입국할 수 없게 되자 우선 랴오둥 반도 차쿠에 있는 성모설지전(聖母雪地殿) 성당으로 가서, 옥살이를 한 후 조선에서 추방된 리델 주교를 만나 조선의 상황을 듣고, 그곳에서 한국어와 한문을 공부하면서 2년동안 머물렀다.

1880년 11월 12일 한국에 입국하여, 황해도 산간 지방에 은둔하면서 거처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성사를 집전, 전교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도둑으로 오인받아 1881년 3월 18일 포졸에게 체포되었다. 그러나 이튿날 신자들과 함께 를 봉헌하면서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당당한 태도를 보였으며 3월 20일 석방되어 신자들과 함께 그곳을 떠나 은둔생활을 하다가 서울로 올라갔다. 1881년 가을 전라도 지역에 파견되었다. 그곳에서 약 6년 동안 적극적으로 전교하여 50개 마을에 흩어져 있는 3천여 명의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었고, 200여 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1887년 3월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초대 교장에 임명되었다. 순한국식 건물인 교사가 불편한 점이 많아 교사 신축에 노력하여 1892년 6월 25일 2층 건물의 교사를 준공하였다.

자신에게는 엄격하였으며 다른 사람에게는 매우 관대하였다. 특히 신학생들에게는 그들이 훌륭한 성직자로 양성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랑과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1893년 성 금요일에 허약해진 몸으로 고행과 단식을 하다가 이것이 원인이 되어 장염과 에 걸려, 4월 13일에 종부성사를 받았다. 4월 26일 39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여 용산 성직자 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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