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옹 뒤테르트르

레옹 뒤테르트르

요약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 1891년 한국에 들어와 이천 성당에서 사목 활동을 했다. 청일 전쟁과 동학농민 운동을 겪으며 전교에 힘썼다. 이천과 원주에서 일어난 두 차례의 교안(敎案)사건에 휘말려 곤경을 겪었다.
원어명 Léon Pierre Dutertre
출생-사망 1866 ~ 1904.3.11
본명 레옹 피에르 뒤테르트르
별칭 세례명 레오, 한국명 강량(姜良)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종교

프랑스 노르망디 레지옹(Région) 데파르트망(Département)의 세즈에서 출생하였다. 1890년 9월 28일 사제로 서품된 후 1891년 2월 초 한국에 입국하였다. 서울에 도착한 후 곧바로 경상도에 파견되어 전교를 시작하였다. 1892년 강원도 이천군 이천면에 위치한 이천성당으로 전임되었다. 1894년 때 패주하는 청나라 군사들로부터 간신히 위험을 모면했으나, 그뒤 다시 이 일어나자, 동료 신부인 L.장드르(한국명 최창근)와 함께 저항세력을 조직하여 동학도를 물리쳤다. 그 결과, 입교자가 매우 증가하여 교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교세 확장으로 예비자들의 수가 늘어나자, 1896년 이천성당에서 포내성당을 분할시켰다. 담당 사목 지역이 줄어들자, 여가를 이용해 《신입 교우들을 위한 강론집》을 집필하였다.

이후 뒤테르트르 신부는 뜻하지 않게 두 차례의 교안(敎案) 사건에 휘말려 많은 곤경을 겪었다. 그 하나가 1900년 11월에 이천군 귀당(龜塘)에 사는 김순식(金淳植)과 김응섭(金應燮) 등이 성당을 파괴하고 뒤테르트르 신부를 폭행한 사건으로, 이른바 ‘뒤테르트르 신부 사건’이라고 하는 교안이다. 이 사건은 김순식의 조카 김만섭(金萬燮)이 친척인 김주하(金周河)에게 매매한 가옥에 대한 환퇴 문제가 발단이 되어 일어났다. 천주교 신자인 김주하가 가옥을 사서 소성당을 마련하고 뒤테르트르 신부를 맞이하면서 김씨 가문과 그 집의 가묘를 훼손하고 신주를 폐기한 데서 비롯된 사건이었다. 이 사건 후 교회와 프랑스 공사관 측은 그들을 처단하고 파괴된 성당을 다시 짓도록 배상하라고 주장하였다.

다른 하나의 교안은 1901년 원주에서 발생한 것으로, 뒤테르트르 신부가 강원도 관찰부에 함부로 들어가 관에 압력을 가했다는 오해를 받은 사건이다.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신자들이 교인들에게 전답과 가옥, 송추(松楸) 등을 빼앗겼다고 주장하며 그 값을 받아내겠다고 신자들을 고소하여 재판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재판 도중에 뒤테르트르 신부가 관찰부에 함부로 난입하여 관찰사에게 압력을 가해 고소를 취하하도록 강요하였으며, 재판 비용을 받아내기 위해 가재를 빼앗고 사우(祠宇)의 문호를 부수는 등의 폭행을 하였다는 오해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불행한 일들을 겪고도 계속해서 이천성당의 사목을 담당하여 전교에 힘썼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공소 순방 중에 성홍열(또는 홍역)에 감염되어 1904년 3월 11일 평강(平康) 근처의 거릿말에서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그곳에서 멀지 않은 자치봉 언덕에 안장되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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