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스토 2세

갈리스토 2세

요약 제162대 교황(재위 1119~1124). 1122년에 교황과 하인리히 5세가 맺은 보름스 협약은 성직자의 속권과 영권을 분리하여 각각 왕과 교회에게 귀속시키는 것이었다. 이로써 성직 서임권을 둘러싼 신성로마제국과 교회의 싸움이 일단락되었다.
갈리스토 2세

갈리스토 2세

원어명 Callistus Ⅱ
출생-사망 ? ~ 1124
재위기간 1119-1124
별칭 비엔의 구이도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구이도

구이도에서 부르군드 집안의 백작 윌리엄의 아들로 태어나, 의 구이도라고 불렸다. 1088년에 비엔의 대주교가 되었고, 1106년에는 교황 파스칼리스 2세에 의해 프랑스 교황 특사로 임명되었다. 이때 으로 임명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사로서 그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5세가 파스칼 2세 교황으로부터 강제로 성직 서임권의 양보를 얻어 낸 데 대해 강한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1112년 비엔 교회 회의를 주재하고 여기서 평신도에 의한 성직 서임을 단죄하고 하인리히를 파문케 하였다. 한편 하인리히는 파스칼 2세의 후계자인 젤라시오 2세가 그의 성직 서임권에 대해 재가하기를 거부하자, 그레고리오 8세를 대립 교황으로 세우고 로마에 정착시켰다.

젤라시오 2세는 로마를 떠나 프랑스의 클뤼니로 갔고, 그 곳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사망 후 클뤼니에 모였던 추기경들은 구이도를 교황으로 선출하였다. 구이도는 자신을 갈리스토 2세로 명명하고 1119년 비엔에서 착좌식을 가졌다. 갈리스토 2세는 교황이 되자 곧 하인리히에게 성직 서임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을 제기하였다. 무송에서의 회합은 황제측의 군사적 위협으로 좌절되고, 그 해 6월 갈리스토 2세는 프랑스 툴루즈에서 프랑스 교회 개혁 문제를 다룬 회의를 주재한 후 랭스로 와서 대규모 교회 회의를 개최하고 여기서 또다시 하인리히를 파문하였다.

그리고 나서 갈리스토 2세는 로마로 향하였다. 1121년에 노르만족들의 협조를 얻어 마침내 황제군을 물리치고 대립 교황을 쫓아낼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독일의 제후들이 에 모여 황제에게 교황과의 협상에 동의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맺어진 것이 1122년의 보름스 협약이다. 이 협약으로 성직 서임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제후 주교의 세속적이고 영적인 이중 직책을 대립시키지 않고 구별하여, 속권은 왕으로 하여금 왕홀을 통해 수여케 하고, 영권은 교회로 하여금 주교 반지와 목장을 통해 수여키로 함으로써 성직 서임권을 둘러싼 신성 로마 제국과 교회 간의 오랜 싸움을 일단 종식시킬 수 있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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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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