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디아 벤 요세프

사디아 벤 요세프

[ Saadia ben Joseph ]

요약 중세 유대교 학자. 구약성서를 처음으로 아랍어로 번역했다. 예루살렘 아카데미 원장이었던 아론 벤 메이르와 유대교 달력 계산법을 놓고 논쟁하여 바빌론 공동체 내에서 명성을 얻었다. 928년에는 바빌론의 수라 아카데미 원장이 되었다.
출생-사망 882 ~ 942
국적 이집트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파윰

처음으로 구약성서를 아랍어로 번역한 성서학자이다. 이집트 파윰에서 수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 외에 그의 어린 시절과 가족에 관해서 알려진 것은 없다. 23세 때에 이집트를 떠났는데, 당시 그는 《히브리어-아랍어 사전》을 편찬하였을 정도로 토라와 일반 학문에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905∼921년 그의 활동에 관해 알려져 있는 것은 거의 없지만 팔레스티나에서 탈무드의 구전법과 랍비주의를 거부한 의 한 종파인 카라이트 공동체, 그리고 유일신교의 근간을 거부하는 이원론적 들에게 실망하고 으로 갔던 것만은 분명하다.

921년부터 사디아는 예루살렘 아카데미의 원장이었던 아론 벤 메이르와 바빌론의 유대인 공동체 지도자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유대교 달력 계산법에 대한 논쟁에서 바빌론 쪽의 대표자로 활동하였다. 이 논쟁은 결과없이 끝났으나 사디아가 바빌론식 달력을 고정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명성을 얻었고, 바빌론 공동체에 그의 중요성을 인식시켰다. 벤 메이르 논쟁 사건 이후 사디아는 저술 작업에 몰두하였다, 928년 5월 22일에는 바빌론 유대인 공동체의 수장인 다비드 벤 자카이에 의해 당시 존폐 위기에 놓였던 수라 아카데미의 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수라 아카데미의 명성을 되찾기 위하여 학생 확보와 재정 증대에 주력하였으며, 《탈무드》를 체계화하고 주제별로 정리하는데 노력하였다. 사디아는 주로 바빌론에서 활동하였으며 히브리어 문법, 유대교 교리와 예배, 성서 주석 등에 관한 저작을 많이 남겼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철학의 영향을 받은 사디아는 이성과 계시, 성서의 사상과 철학을 상호 화해시키는데 노력하였으며, 유대교를 체계적으로 제시한 첫번째 중세 유대인 철학자였다는데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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