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어 브레허

테오도어 브레허

[ Theodor Breher ]

요약 베네딕토회 성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옌지[延吉] 본당 초대 주임 신부를 거쳐 1937년에는 옌지 초대 대목구장이 되었다. 옌지에 수녀원, 진료소, 인쇄소 등을 설립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으로 추방되어 본국에 송환되었다.
출생-사망 1889.8.23 ~ 1950.11.2
별칭 세례명 테오도르, 한국명 백화동(白化東)
국적 독일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독일 슈바벤 오토보이렌

독일 슈바벤의 오토보이렌에서 태어나 베네딕투스회 성 오틸리엔 연합회에 입회하여 1911년 10월 8일 서원한 후, 딜링겐 신학교에 들어가 1915년 7월 16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뮌헨 대학교 신학부에서 1년 동안 공부하였고, 베를린 대학교 대학원에서 중국학을 전공하면서 중국어··일본어·산스크리트어 등을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역의 에 대해 연구하라는 임무를 받고 1921년 서울에 온 브레허 신부는 한국 언어와 풍습을 익힌 뒤, 이듬해 여름 원산 대목구 초대 교구장인 사우어(한국명 신상원) 주교의 지시에 따라 주임 신부가 공석이던 삼원봉(三元峰) 본당에서 5개월 동안 사목하였다. 이후 [延吉] 본당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으며, 옌지 지목구가 설치되자 1929년 2월 5일 옌지 초대 지목구장으로 임명되었다.

캄의 하일릭크로이츠 원에 수녀 파견을 요청하여 1931년 옌지 수녀원을 설립하였고, 1935년 7월에는 본국 방문 후 독일인 선교 의사 레너 박사와 함께 입국하여 옌지에 진료소를 개설하였다. 또한 인쇄소를 개설하여 《가톨릭 소년》을 비롯한 각종 전례서·교리서·기도서 등도 간행하였다.

옌지의 베네딕토 수도원이 1934년에 으로 승격되자 초대 아빠스로 임명되었으며, 1937년 4월 13일 옌지 초대 대목구장으로 임명되었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추방령이 내려지자 본국으로 송환되어 오틸리엔 수도원에 머물던 중 사망하여 수도원 내에 있는 예수 성심 성당의 십자가 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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