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에티우스

보에티우스

요약 가톨릭 순교 성인. 뛰어난 학식을 인정받아 테오도리쿠스 대제의 집정관을 거쳐 최고 행정 사법관이 되었다. 전 집정관 알비누스를 옹호하다가 반역 혐의를 받아 파비아 감옥에 갇혀 순교했다. 저서로《신학논고집》,《철학의 위안》이 있다.
원어명 Anicius Manlius Torquatus Severinus Boethius
출생-사망 470? ~ 524
본명 아니치우스 만리우스 토르과투스 세베리누스 보에시우스
별칭 마지막 로마인이자 중세기의 창립자요 최초의 스콜라 학자
국적 이탈리아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이탈리아 로마
주요저서 《신학논고집》, 《철학의 위안》

축일은 10월 23일이다. 로마의 그리스도교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487년에 동고트족 테오도리쿠스(테오데리히) 대제의 집정관이 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귀족 아우렐리우스 심마쿠스(Aurelius Symmachus)의 집에서 자랐으며 훗날 그의 딸과 결혼하였다. 그는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수학하면서 문학·철학·산술학·기하학·음악·천문학 등 다방면의 학문을 공부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학식과 인품이 테오도리쿠스 대제의 인정을 받아 510년경에 집정관이 되었고, 520년에는 최고 행정 사법관이 되었다.

520년에 로마의 의원들과 테오도리쿠스 대제는 전(前) 집정관 알비누스(Albinus)가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누스 1세(518∼527)와 내통하였다는 이유로 고발하였는데 이때 보에티우스(보에시우스)가 법정에서 알비누스를 옹호함으로써 그 역시 반역혐의를 받았고, 마술을 부려 신성을 모독하였다고 고발당하였다. 그는 가톨릭에 대한 들의 박해와,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사이의 화해관계에 대한 위협이 된다는 사회적인 배경으로 총애를 잃고 반역자로 고발되어 (Pavia)의 감옥에 갇혔다. 524년에 잔인하게 처형되어 파비아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성 베드로 성당)에 묻혔고, 훗날 원로원 동료였던 T.M.A.카시오도루스에 의해 그의 전기가 작성되었다. 브레시아(Brescia) 등 몇몇 이탈리아의 교구에서 순교자로 공경받아 오다가 1883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하여 시성됨으로써, 파비아에서 거행되던 그에 대한 공경이 교회에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그가 520년경에 쓴 것으로 보이는 《신학논고집(Opuscula sacra)》을 통해 끼친 교의적인 영향은 12세기 샤르트르 학파 학자들의 주석서를 통해 절정에 달하였다. 또한 그가 감옥에서 저술한 《철학의 위안》은 산문과 시를 번갈아 사용하여 아름다운 문체가 돋보이는 대화 형식의 철학서로 5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치 이교도 철학자가 쓴 것처럼 보인다. 이 책에서 그는 은총과 자유의지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 책에 대한 연구와 주석, 번역이 11∼15세기에 성행하였는데 19세기에는 독일의 여러 학자들이 방법론적인 면에서 나타난 그의 그리스도교 사상을 비판하였으며 그가 이교도였다고 단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저서에는 그리스도교 사상의 흔적이 보이며, 그 안에는 또한 교의를 전제한 복음의 정신이 나타나 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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