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닐라

베드로닐라

[ Petronilla ]

요약 가톨릭 순교 성녀. 사도 베드로의 딸이라고 전해진다. 프랑크 왕국의 피핀 3세는 성녀의 유해를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지하 묘지로 옮겼다. 이후 프랑스 왕들은 이곳을 자신의 경당으로 여기고 베드로닐라를 프랑스의 수호 성녀로 섬겼다.
출생-사망 ? ~ 251?
국적 이탈리아
활동분야 종교

축일은 5월 31일이다. 그녀에 관한 순교 행전은 없지만 〈베드로 행전〉, 〈필립보 행전〉, 6세기에 작성된 행전, 그리고 (그노시스주의)적인 작품에 의하면 사도 베드로의 딸이라고 한다. 《로마 순교록》에는 성녀가 자연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수난기에는 그녀가 로마 귀족 플라쿠스(Flaccus)의 청혼을 거절한 후 3일 동안 단식하고 기도하던 중 죽음을 맞이하였으며, 임종 전에 성체를 영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기록과 발굴 사실로 드러난 바에 따르면 비아 아르데아티나(Via Ardeatina)에 있는 성 도미틸라의 지하 묘지에 390~395년 경에 세워진 대성당이 있었는데 4세기경 성당벽화에 그린 벽화에는 한 여인이 죽은 자를 천국으로 안내해 들어가는 장면과 ‘순교자 베드로닐라’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의 피핀 3세(741∼768)는 그녀가 사도 베드로의 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성녀의 유해를 사도 베드로의 무덤곁으로 이전하기를 바오로 1세 교황(757∼767)에게 요구했고, 757년에 성녀의 석관과 유해가 산 피에트로 대성당(성 베드로 대성당)의 지하묘지로 옮겨졌다. 현재 베드로닐라의 제대는 사도 베드로 좌 오른편의 둥근 천장 아래에 있다. 성녀의 유해가 옮겨진 후 프랑스의 왕들은 이곳을 자신의 (Capella regum Francorum)으로 여겼으며, 피핀으로 인해 베드로닐라가 프랑스의 수호 성녀로 공경을 받았다.

이 경당은 역대 프랑스왕들에 의해 아름답게 꾸며졌으며, 후대 교황들은 미켈란젤로와 브라만테에게 경당 장식을 의뢰하였다. 순교 사실은 의문시 되지만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었다는 견해는 널리 인정받아 그녀에 대한 공경의식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와 독일 등에서도 거행되고 있다. 그녀는 영국 중세 후기 유리화와 그림 등에 종종 사도 베드로에게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열쇠꾸러미를 든 모습으로 등장하며, 에는 종려나무 가지와 책을 들고 서 있는 작은 소녀로 묘사되고 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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