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순

박희순

[ 朴喜順 ]

요약 1839년 기해박해 때의 동정 순교한 천주교 성인. 세례명 루치아. 순조 때 궁녀로 생활하였으나 30세 무렵 천주교를 알게 되었다. 신앙생활을 하고자 병을 핑계로 대궐을 나와 활동하다 순교하였다.
출생-사망 1801 ~ 1839
별칭 세례명 루치아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서울

축일은 9월 20일이다. 서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15세가 되기 전에 로 선발되었다. 이때 어린 순조의 유혹을 물리쳐 대궐안에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글을 알고 영민한 덕택에 순조의 딸 복온공주(福溫公主)에게 글을 가르쳤으며, 그들의 거처인 창녕위궁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純元王后) 김대비의 눈에 들어 상궁의 자리에 올라 선왕의 위패를 모시게 되었다. 그녀가 천주교를 알게 된 것은 30세 무렵으로, 그 신앙을 받아들였으나. 궁녀의 으로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없음을 알고 병을 핑계로 대궐을 빠져나오게 되었다.

천주교를 몹시 싫어한 아버지 때문에, 언니 박큰아기와 함께 남대문 밖 조카 집에서 머물렀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조카의 가족을 모두 입교시켰다. 1839년 가 일어나자 언니와 함께 궁녀 출신인 전경협(全敬俠, 아가다)의 집으로 가서 생활하였고 조카와 그 가족도 모두 이곳으로 이주하였으나 4월 15일에 포졸들에게 붙잡혀 포도청으로 압송되었다. 이때 포장은 궁녀 출신인 박희순과 전경협을 보고 높은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학을 믿었다는 이유로 남보다 더 혹심한 형벌을 가하도록 하였다.

로 이송되어 끔찍한 형벌을 받았으나 오히려 형리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교우들에게 서한을 돌리는 여유를 보였다. 교회측 기록에 의하면 형벌을 받은 다음날에는 그 상처가 다 나았다고 한다. 한 달여 동안 형조에 갇혀 있다가 다른 8명의 교우들과 함께 사형 판결을 받고 5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를 받아 39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3일 동안 형장에 버려졌던 시신은 교우들에 의해 거두어져 L.J.M.[范世亨]주교가 사놓은 매장지에 묻혔다.

1925년 7월 5일 교황 피우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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