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예타누스

카예타누스

[ Cajetanus da Thiene ]

요약 가톨릭 성인. 테아티노 수도회의 창립자로 설교와 병자 간호, 성직자 신분의 개선을 목적으로 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 이전의 가톨릭 개혁가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성인으로 평가받는다.
출생-사망 1480 ~ 1547
국적 베네치아 공화국
출생지 비첸차

가톨릭 교회의 성인으로 테아티노 수도회의 창립자로 축일은 8월 7일이다. 티에네의 가스파레 백작과 마리아 디 포르토의 아들로 베네치아 공화국 부근 에서 출생하였다. 2세 때 부친이 전사했기 때문에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1504년 파도바 대학에서 민법과 교회법 박사 학위를 받고 곧 비첸자의 시의원이 되었으며, 1506년에는 로마로 가서 교황 율리우스 2세로부터 공증인으로 임명되었다. 다음해 교황이 서거하자 직책을 사임하고, 1516년 36세의 나이로 사제로 서품된 후 비첸자로 돌아왔다.

이 곳에서는 성 예로니무스의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여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였다. 1523년 로마로 가서 G.I.카라파 등 동지 3명과 함께 테아티노회를 창설하여 이듬해 교황 의 승인을 받았다. 테아티노는 후일 교황이 된 초대 총장 카라파 주교의 출생지 이름에서 가져왔다. 테아티노회의 정식 명칭은 신의 성직 율수 성직자회(聖職律修聖職者會, Clerici Regulares)로, 재속 사제들로 구성된 성직 수도회이며 공동 생활을 하고 청빈· 정결· 순명의 삼대 서원을 하였다.

설교와 병자 간호, 성직자 신분의 개선을 목적으로 창립된 테아티노회는 특히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일체의 재산을 포기함으로써 당시 재물 축적으로 추락된 사제직의 위상을 회복하는 데 공헌했다. 회원수가 적고 엄선된 인원으로 다소 귀족적인 분위기였지만 자선 사업에 헌신했고 영성과 전례 연구의 중심이 되었다. 특히 전례 연구는 이 수도회의 특성이 되었다. 1527년 로마가 점령당하자 수도회는 로마를 떠나 베네치아로 피난했는데 여기서 카예타누스는 재물을 감추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스페인 군인들로부터 많은 고문을 당하기도 하였다.

1530년, 총장으로 선출된 카예타누스는 개혁에 반대하는 이단적인 가르침을 과감히 물리쳤다. 그의 거침없는 기도와 설교, 성체 신심, 자선 사업, 금욕 생활 등은 교회 개혁 정신의 영적 밑거름이 되었다. 생전에 이미 성인으로 추앙받은 카예타누스는 1629년 8월 7일 교황 우르바누스 8세에 의해 시복되고, 1671년 교황 클레멘스 10세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카예타누스는 전에 있었던 가톨릭 개혁가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성인으로 평가받으며 오늘날도 신자들에게 특히 사제들에게 무소유의 모범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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