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순

박진순

[ 朴鎭淳 ]

요약 1918년 한인사회당 중앙위원을 지낸 사회주의 운동가. 1920년 코민테른 집행위원에 선임되었으며, 1921년 이동휘 중심의 고려공산당 상해파 결성에 동참하여 중앙위원이 되었다. 같은 해 11월 상하이에서 신채호와 박용만을 만나 항일운동이 공산주의로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출생-사망 1897 ~ ?
국적 한국
활동분야 사회주의 운동
출생지 러시아 연해지방

1897년 러시아의 에서 태어나 어려서 을 공부하였다. 의 러시아 상급학교에 진학하여 1916년에 졸업하고 의 조선인학교 교사가 되었다.

1917년 5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군명(韓君明)·(吳永善)·한명서(韓明瑞) 등이 결성한 항일독립운동 단체인 전로한족회중앙총회에서 볼셰비즘을 지지하였다. 1918년 4월 에서 이동휘(李東輝)·박애(朴愛)·김립(金立) 등이 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정당인 한인사회당 창립 대회에서 중앙위원에 선임되었다.

1919년 2월 연해지방 수찬(지금의 )의 한인빨치산 부대에서 활동하였으며, 같은해 4월 한인사회당 군사부장이 된 뒤 당을 대표하여 모스크바의 코민테른(인터내셔널_제3인터내셔널)에게 재정지원을 요청하여 8월 레닌으로부터 받은 활동자금을 가지고 9월에 에 도착하였으나 전러한인공산당 소속의 김철훈(金哲勳)에게 빼앗기는 일명 국제공산당자금 사건이 발생하였다.

1920년 코민테른 집행위원에 선임되었으며, 1921년 이동휘 중심의 고려공산당 상해파 결성에 동참하여 중앙위원이 되었다. 같은해 11월 [上海]에서 (申采浩)와 (朴容萬)을 만나 항일운동이 로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1922년 1월 (朴憲永)·(林元根)·(呂運亨) 등과 함께 코민테른 집행위원회가 주최한 동아시아 각국 공산당 및 민족혁명단체 대표자들의 연석회의인 극동민족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갔다.

1925년 를 졸업한 뒤 젠다오[間島]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벌였다. 1929년 3월 [吉林省] 둔화현[敦化縣]에서 김철수(金綴洙)·윤자영(尹滋瑛)·김영만(金榮萬) 등이 결성한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에 가담하여 기관지 《볼쉐비키》를 편집하였으며, 1936년 모스크바의 외국인노동자출판사에서 교정인으로 일하였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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