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계몽운동

농촌계몽운동

[ 農村啓蒙運動 ]

요약 학생이나 학식 있는 지도자들로 구성된 단체가 농촌을 대상으로 하여 교양을 기르고 사상을 깨우치며 생활을 개선하고 보건위생 등을 교화, 보급하고자 하는 운동.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에 민족주의 계열이 주도한 농민·농촌 계발운동이 그 시초였다. 주로 농촌의 교양수준 향상, 생활의 질적 개선, 보건위생에 대한 인식 확대, 생산성 향상 또는 국가정책에 대한 교화·보급에 역점을 두었다. 이 운동은 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라 도시와 농촌간의 생활·문화양식 및 그 수준의 커다란 지역 차이 때문에 더욱 강조되었다.

농업기술 및 토지소유제도의 정체성 등에 바탕을 둔 사회집단으로서의 농촌의 후진성, 교육·문화 수준의 질적 문제, 빈곤·과중노동·인구·보건위생의 문제, 농촌의 여성·청년 문제 등이 도시지역에 비하여 수준이 낮으며, 발전이 정체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시되었다. 따라서 도·농간의 위화감, 농촌의 정치적·경제적 낙후성 극복이 우선과제였다. 농촌의 문맹을 위한 야학 개설, 새로운 영농 방법의 지도 등이 모두 농촌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한국의 , 러시아의 브나로드 운동 등은 농촌계몽운동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의 절대적인 후원과 우수한 남녀 새마을지도자, 그리고 정부(공무원과 정부지원)라는 3자의 연합이 핵을 이루면서 추진된 새마을운동은 정치적 의미가 어떠하든 1970년대의 경이적인 경제발전의 기틀이 되었다.

러시아에서는 1861년 (인민주의자)들이 을 중심으로 농노의 인신해방(人身解放)과 봉건성(封建性)의 타도라는 기치를 내걸고 브나로드 운동을 벌였다. 후진성의 상징이었던 러시아 농촌의 공동체를 그 기반으로 삼은 이들은, 자본주의를 뛰어넘어 사회주의에 이를 것을 꿈꾸었다. 농민 분여지(分與地)의 확대, 농민은행의 확대, 시민권의 보증 등을 요구한 나로드니키는 와 강하게 대립하였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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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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