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 오광대

남구 오광대

[ 南鳩五廣大 ]

요약 경남 사천시에 전하여 내려오는 탈놀음.

음력 정초에 농악놀이를 할 때 간단한 탈놀음을 꾸며서 놀았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남구오광대는 1935년경에 서구오광대의 가면을 구입하고, 서구오광대의 주동자인 최태술(崔泰術)의 지도를 받으면서 본격적인 놀이로 시작되었다. 일본강점기 말엽에 탄압을 받아 일시 중단되였다가 8·15 광복 후 2, 3년 동안 다시 공연되었다고 한다.

놀이는 음력 12월 20일경부터 농악과 탈 등을 준비하며 시작된다. 새해에 들어서 정월 3일이나 4일 아침부터 농악대가 마을의 (堂山) 등을 돌면서 농악을 울리며 축원을 한다. 그런 다음 마을의 각 가정을 방문하여 성주풀이·조왕풀이 등 액을 막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도록 축원을 하는 를 한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마을의 빈터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자정이 될 무렵까지 오광대를 공연하였다. 자기 마을의 공연이 끝난 다음 날부터 정월 20일경까지는 가까운 마을을 돌며 농악과 오광대를 공연하였다. 남구오광대에 쓰이는 탈은 오방신장(五方神將)탈·문둥이탈이 각각 5개, 작은양반탈·제대각시탈이 각각 2개, 양반탈·말뚝이탈·사자탈·중탈·상좌탈·할미탈·마당쇠탈·옹생원탈·순사탈 등이 각각 1개이다. 이 가운데 양반탈·말뚝이탈·사자탈은 대소쿠리에 종이를 발라서 만들고, 문둥이탈은 바가지에 종이를 발라서 만든다. 나머지 탈은 모두 흰 장판지에 형상을 그려서 만든 평면의 종이가면이다. 음악은 굿거리 장단이 주를 이루는데, 꽹과리·장구·북·징 따위의 농악기로 장단을 치며, 이 굿거리 장단에 맞추어 덧베기춤을 춘다. 놀이는 출연하는 사람이 모두 나와 집단으로 어지럽게 마구 춤을 추다가 일곱 과장의 놀이를 하고 나서, 다시 처음에 추었던 춤을 추며 끝을 낸다. 이 때 일곱 과장은 모두 각기 내용과 주제가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놀이는 황제장군이 동서남북의 각 신장과 함께 의식적인 춤을 추는 제1과장인 '오광신장무' 에서 시작하여 양반을 풍자한 제2과장, 문둥이들의 생활을 웃음극으로 꾸민 제3과장, 양반 계급의 부정과 허위를 날카롭고 매섭게 풍자하는 제4과장, 파계승을 풍자하는 제5과장, 아내와 첩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가정 비극을 표현한 제6과장을 거쳐 사자가 토끼 한 쌍을 잡아먹고, 그 사자를 포수가 총을 쏘아 잡는 내용의 제7과장은 (獅子舞)에서 끝이 난다.

각 가정을 돌며 오광대놀이를 할 때는 집주인들이 사례로 돈과 곡식을 내놓았다. 또 제5과장인 중과장에서 중이 곤장을 맞고 신세 타령을 하며 산에 올라갈 노자를 동냥할 때 관객이 돈을 던져 준다. 이것을 모으면 농악과 오광대를 공연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제하고도 남아 그것으로 마을의 공동 기금을 마련할 정도였으므로, 무료로 오광대를 공연하였다고 한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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