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서원

소현서원

[ 紹賢書院 ]

요약 황해남도 벽성군 석담리에 있는 서원.
지정번호 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79호
소재지 황남 벽성군 석담리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서원, 향교유적

의 국보 문화유물 제79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유학자인 율곡 이이가 낙향하여 후진을 양성하고 학문을 연구하던 곳에 세운 서원이다. 석담천 맑은 물이 아홉 굽이를 돌면서 돌못(석담)을 이루고, 천하절승으로 이름난 석담구곡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명소인 다섯 번째 굽이 '은병'에 자리잡고 있다.

1575년(조선 선조 8) 율곡이 청계당을 지어 제자들을 가르쳤고, 1578년에 운병정사(雲屛精舍)를 지어 주자(朱子)의 영정을 모셨다. 1586년(선조 20)에 을 건립하면서‘석담서원’으로 불렸는데, 당시에는 이이를 비롯한, 주희, 조광조, 이황을 모셨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1604년(선조 38) 정양호(鄭陽浩)와 목사 (金尙寯)이 복원하였다. 1610년(광해군 2)에 '소현'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며, 조광조·이황·이이·성혼·김장생·송시열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사당·강당·재실·전사청·창고 등이 있었다.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고, 지방 의 회합 장소로 사용하던 중 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 훼철되었다가 1950년대 이후에 복원되었다. 네모난 담장 안을 다시 앞뒤 두 구역으로 나누어 앞 구역은 강당, 뒷구역은 사당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담장 바깥 앞쪽에는 청계당(聽溪堂)과 요금정(瑤琴亭)을 비롯한 여러 건물들이 있다.

배치는 전학후묘형이며 사당과 강당이 남북축을 형성하고 제향 영역과 강학 영역, 보조 영역으로 구분된다. 사당과 강당, 내삼문, 외삼문, 요금정, 비각, 협문 등이 남아 있고 동·와 전사청은 불타 없어졌다.

강당은 정면 4칸(9.98m), 측면 3칸(6.25m)의 간소한 팔작지붕 기와집이고, 사당은 정면 3칸(7.63m), 측면 3칸(5.82m)으로 익공계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사당 앞 오른쪽의 천조각이라는 소규모 비각 안에 추사 가 쓴 비문이 있다.

앞마당 한복판에는 서원의 유래를 상세히 서술한 소현서원 묘정비가 있고 그 앞에 일각문 2개로 구성된 내삼문이 있다. 그 옆에는 요금정이 있고 서쪽으로 조금 높은 곳에는 청계당이 있다. 인근에 율곡이 거주하던 집과 가묘가 있다.

외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솟을삼문 형식으로 되어 있다. 2단 장대석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민흘림이 있는 각기둥을 세웠다. 상부에는 가운데에 홍살을 두었고, 공포는 올리지 않았으며, 모로단청으로 치장하였다.

강릉의 오죽헌, 안동의 도산서원, 개성의 등과 함께 대표적인 서원의 하나로 꼽힌다. 조선시대 서원건축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건축유산이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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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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