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정부

김대중정부

[ 金大中政府 ]

요약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헌정사상 첫 여야 정권교체를 실현한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의 공동정부.

제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호남지역에 정치기반을 둔 와 충청권에 기반을 둔 은 을 단일후보로 내세워 정권을 쟁취하였다. 이어 양당은 1998년 2월 25일 김대중의 제15대 대통령 취임과 함께 자유민주연합의 (金鍾泌)을 국무총리로 하고, 내각 각료를 안배해 공동정부를 구성한 뒤, 새 정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의미에서 새 정부의 이름을 '국민의 정부'로 붙였다. 이와 함께 김대중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총체적 개혁을 다짐한 후 와 경제발전의 병행 실천을 국정과제로 제시하고 새 정부를 참여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국민의 정부로 규정하였다.

새 정부는 출범 초반, 의 과반수 을 초과 확보한 한나라당의 제동으로 국무총리 및 감사원장의 국회 인준이 지연되는 등 정국 운영에 어려움을 겪다가 구여권의 국회의원을 대거 영입함으로써 가까스로 국회 안정세를 확보하였다. 이후 기업 , 금융개혁, 탈출 등의 경제적 난국을 타개하는 한편, 민주주의와 의 병행 발전을 바탕으로 하는 'DJ 노믹스'를 표방하고, 남북관계에서는 '햇볕정책'이라는 큰 틀을 내세워 남북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여는 데 주력하였다.

김대중정부는 이러한 기본적인 틀을 바탕으로 정책을 추진하였는데, 크게 외치(外治)와 내치(內治)로 대별된다. 먼저 외치에서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토대로 북한·미국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는 가운데서도 한반도의 평화 체제를 구축하였고, 대(對) 미국 관계뿐 아니라 국제무대에서도 한국의 발언권을 높이는 등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 이후 이산가족 상봉, 경의선·동해선 연결 등 교류 활성화와 민간 통일운동의 활성화, 그리고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경제협력의 확대를 통해 화해·협력 체제를 구축하였다. 그 밖에 (IMF) 외환 위기의 극복과 월드컵·아시아경기대회의 성공적 개최 등을 통해 국가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 반면, 대북 송금 과정에서 국민적 동의 부분이 소홀하게 취급되는 등 정책을 투명하게 추진하지 못했다는 점이 오점으로 지적된다.

둘째 내치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보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외환 위기 극복과 정보기술(IT)의 활성화, 생산적 복지 개념의 도입 등 긍정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임기 말에 불거진 두 아들과 측근들의 비리를 막지 못함으로써 도덕성이 실추되었을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도도 크게 떨어졌다. 또 고질적인 지역분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고, 정치적으로도 측근 정치의 문제가 김대중정부 5년 동안 계속 지적됨으로써 새로운 변화의 요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등 정치 개혁과 비리 척결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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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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