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
[ 楊花津 ]
- 요약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강 북안(北岸)에 있던 나루.
양화진
양화도(楊花渡)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한양(漢陽)에서 강화(江華)로 가는 주요 간선도로상에 있던 교통의 요지였을 뿐만 아니라, 한강의 (漕運)을 통하여 삼남(三南) 지방에서 올라온 세곡(稅穀)을 저장하였다가 재분배하는 곳이었다. 또 한양의 천연방어선을 이루는 요지였으므로 진대(鎭臺)를 설치하였다.
처음에는 (渡丞)을 배치하였다가 뒤에 (別將)으로 바꾸었으며, 10척의 선박이 배치되었고, (御營廳)이 관할하였다. 세곡을 관리하기 위하여 (戶曹)에서는 점검청(點檢廳)을 두었다. 한편 이 지역은 정자가 많고 아름다운 지역으로 이름이 났을 뿐만 아니라, 초기 천주교도들이 순교한 곳인가 하면 상해에서 암살당한 개화의 선각자 (金玉均)의 시체가 청나라와 정부에 의해 능지처참 당한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지금은 이 지역에 양화진 순교자기념관과 한말 한국의 개화에 공헌한 외국인들의 공동묘지인 외인묘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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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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