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락

장지락

[ 張志樂 ]

요약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공산주의자. 1926년 조선혁명청년연맹을, 1936년 상하이에서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하고, 1938년 중국공산당에 의해 반혁명죄와 간첩죄로 처형되었다. 저서로 소설 《기묘한 무기》(1930) 《백의민족의 영상》(1938) 등이 있다.
출생-사망 1905 ~ 1938
별칭 가명 김산(金山) ·손명구, 필명 염광(炎光) ·장북성
활동분야 독립운동, 혁명운동
출생지 평북 용천
주요저서 《기묘한 무기》(1930), 《백의민족의 영상》(1938)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다. 가명 김산(金山)·손명구·유청하·유한평·이철암·한국류. 필명 염광(炎光)·장북성. 1919년 3·1운동 후 독립운동을 할 목적으로 일본과 만주를 거쳐 1920년에 상하이[上海]로 갔다. 그곳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의 편집을 이광수가 맡고 있었는데, 그를 도와 교정을 보면서 식자공으로 일하였다. 1921년 의학공부를 하기 위해 베이징[北京]으로 갔다. 이 시기에 무정부주의의 영향을 받아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과 레닌의 《국가와 》을 읽고 자가 되었다.

1923년 상하이에서 공산청년동맹에 가입하였으며, 베이징에서 김성숙 등과 함께 잡지인 월간 《혁명》을 발간하였다. 1924년에는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의 북경지부를 조직하였다. 이때 중국공산당의 고위 간부와도 교류하여 1925년에는 당시 중국공산주의운동의 본거지였던 광저우[廣州]로 가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26년 분파주의를 청산하고 통일된 운동을 주도하기 위하여 김원봉 ·김성숙 등과 함께 조선혁명청년연맹을 결성하였다. 또한 각 파벌의 주도권 경쟁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한국공산주의자’라는 비밀그룹을 결성하였으며, 민족주의자들과 함께 민족독립당을 조직하였다. 1927년에는 중국인들과 함께 광둥[廣東]코뮌 건설에 참여하였으나 3일 만에 중국국민당의 공격을 받아 해륙풍소비에트로 철수하였다.

1929년 해륙풍소비에트마저 국민당 측에 점령되자 그곳에서 탈출하였다. 그 후 조선인의 중국공산당 입당을 주도하다가 1930년 11월과 1933년 4월 2차례에 걸쳐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는데, 2차례 모두 곧 석방되자 일본의 스파이로 의심받아 중국공산당에 다시 가입하지 못하였다. 1936년 상하이에서 김성숙과 함께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하였다. 그 후 옌안[延安]의 군정대학에서 가르쳤으나, 1938년 중국공산당에 의해 반혁명죄와 간첩죄로 처형되었다. 그러나 1983년 복권되었다.

저서로 소설 《기묘한 무기》(1930) 《백의민족의 영상》(1938) 등이 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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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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