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관창리 유적

보령 관창리 유적

[ 保寧寬倉里遺蹟 ]

요약 충남 보령시 주교면(舟橋面) 관창리에서 발굴 조사된 청동기시대 주거, 방형주구묘(方形周溝墓) 및 무논[水田] 유적.
소재지 충남 보령시 주교면 관창리
시대 청동기시대
지정 1995년

관창리는 보령시에서 북쪽으로 약 2km에 자리잡은 분지성(盆地性) 구릉지역으로 서쪽으로는 해안과 접해 있다. 이 유적은 대우(주)가 관창공단 조성 사업을 하던 중 구역 내에서 1995년 6월 고려대학교 매장문화재 연구소에서 발굴 조사한 것으로, 주거지는 200여 기가 넘는 취락지와 103기의 방형주구묘, 2,000여 평의 무논 유적으로 이루어졌다.

주거지의 형태는 원형의 평면 중앙에 타원형의 움[土壙]을 판 형태의 송국리형(松菊里型) 주거지로 크기는 지름이 10 m를 넘는 것에서부터 4~5m의 작은 것까지 다양하다. 내부는 다른 구덩[竪穴]주거지처럼 폐기와 더불어 자연적인 퇴적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구덩 상면에서 20~40 cm 높이까지 인위적인 시설물에 의한 자연적인 퇴적양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특이한 구조이다. 즉 평상(平床)시설과 같은 시설물에 의해 퇴적물의 하부가 먼저 폐기되면서 함몰되는 퇴적현상 때문에 구덩 바닥과 생활면 사이에 유기물질이 혼입된 층이 나타났다.

토기류를 비롯한 주거지 내부 출토유물은 복원 가능한 완형토기류가 200여 점, · ·돌화살촉 ·숫돌 등 석기류가 500여 점이 출토되었는데, 그 대부분은 이 유기물층에서 나왔다. 이 주거지와 더불어 생활용기를 제작하였던 요지(窯址) 30여 기, 곡식 등을 저장하였던 저장시설 50여 기, 고인돌[支石墓] ·돌널무덤[石棺墓]을 비롯한 20여 기의 무덤이 공간을 달리하면서 나왔다. 이들 무덤 가운데서 특기할 만한 것은 방형주구묘이다. 총 103기로 확인된 이 무덤양식은 한 변이 20m를 넘는 대형에서 7~8m 정도의 작은 것까지 매우 다양하였다.

무덤의 주체부는 성토(成土) 부분이 오랜 세월과 더불어 소실된 것이 대부분임에도 잔존한 것으로 보아 움을 파서 널 또는 돌널을 안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물은 토기류가 대부분이나 동경(銅鏡) ·[管玉] ·쇠투겁창[鐵矛] 등의 금속류도 함께 출토되었다. 조영(造營) 시기는 출토 토기로 보아 4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이러한 분묘유적은 일본에서 조몬[繩文]시대가 끝나고 농경사회 시기인 야요이[彌生]시대에 해당하는 BC 3세기 말부터 긴키[近畿]지방을 중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여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 등장하는 4세기까지 지속된 묘제로 알려졌다. 이번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이 유적은 이러한 의미에서 일본의 고대문화를 이룩한 세력집단에 대한 문제점들을 풀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논 유적은 약 2,000평의 범위가 확인되었는데,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며, 폭이 좁은 계곡부의 중앙을 관통하는 하천을 정비하여 수리시설을 갖춘 후에 그 양쪽을 무논으로 사용한 습지형(濕地形) 무논에 해당한다. 수로(水路)는 무논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일시적으로 가두어두거나 다시 다른 무논으로 들어가게 하는 정교한 보(洑) 시설을 하고 있어서 당시 무논 경작이 상당한 수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수로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들도 구릉 주거지에서 출토된 송국리형 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이 유적이 취락지의 생활기반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들 방형주구묘 유적과 무논 유적은 일본에 대한 문화전파의 관계를 밝혀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생활기술사(生活技術史)를 밝혀줄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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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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