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궁

풍경궁

[ Punggyeonggung Palace , 豊慶宮 ]

요약 1902년(광무 6) 평양에 건조한 고종황제의 이궁(離宮).
소재지 북한 평양
시대 조선시대 1902년(광무 6년)
종류/분류 이궁

그 재원은 ‘양경향인대부(兩京鄕人大夫)’의 6자를 고종이 친서한 개향례목전(開鄕禮木錢:木牌)을 평남 ·북 및 황해의 3도에 배부하여 1호당 2원씩을 징수하여 마련하였다. 공사 중 이 발발하여 완공을 못보고 중단하였으나, 정전(正殿)인 태극전과 중화전(重華殿)은 완공되어 여기에 고종의 어진(御眞)과 왕세자의 예진(睿眞)을 안치하였다. 이곳을 관리하기 위하여 정리사(整理使:勅任官)과 부정리사(평안도관찰사가 겸임)를 두었으며 (鎭衛隊)가 이를 지켰다. 러일전쟁과 일제의 침탈이 극에 달한 격변기여서 고종의 행행(行幸)은 한 번도 없었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건물로 사용되다가 도립병원이 되었으며, 본궁은 병동사(病棟舍)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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