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산직장려계

조선산직장려계

[ 朝鮮産織奬勵契 ]

요약 민족경제 자립을 목적으로 조직한 항일 비밀결사단체.
구분 항일 비밀결사단체
설립일 1915년 3월
설립목적 민족경제의 자립
주요활동/업무 국내산업 발전을 위한 계몽, 《동유지》 간행·배포

1914년 일본으로 을 갔던 경성고등교원양성소 학생들이 일본의 현대적 문물제도의 발달을 보고 돌아온 뒤 1915년 1월 성경연구회(聖經硏究會)에서 민족경제 자립을 목적으로 집회를 가졌다. 경성고등교원양성소 재학생 이우용(李雨用)이 주동이 되어 각종 사업을 펼쳐 일본에 탈취당한 경제권을 되찾고 민족의 실력을 배양하고자 조선물산장려계(朝鮮物産奬勵契)를 발족시켰다.

이 단체의 취지와 목적은 1920년대의 과 궤를 같이 한다. 자급자족을 통한 의 성장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고, 조선의 부진으로 외래 상품이 광범위하게 유입되는 것을 우려, 국내 토착산업이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조직의 운영은 제도를 도입하여 1주에 20원씩, 계원 1명이 10명의 를 모집하기로 하였다.

주요 간부는 계장에 중앙학교 교사인 최규익(崔奎翼), 총무에 윤창식(尹昶植), 회계에 최남선(崔南善)·민용호(閔容鎬), 서기에 이진석(李鎭石)·엄주동(嚴柱東), 협의원(協議員)에 유근(柳瑾)·남형우·김창덕(金昌德)·이강현(李康賢)·오상현(吳相鉉)·김두봉(金枓奉)·백남운(白南雲)·안종건(安鐘建)·김일(金馹)·박중화(朴重華) 등이 임명되었다.

사립학교 교원 44명, 경성교원양성소 학생 17명을 포함하여 총 130여 명에 이르렀고, 이 중에는 직물업에 대한 선진적 지식과 실무경험을 가진 인물들도 있었다. 또한 해외에서 발행되는 독립신문인 《국민보(國民報)》를 구독하고 일본 수학여행에서 느낀 것을 기록한 《동유지(東遊誌)》를 간행 배포하였다. 1917년 본격적인 활동에 착수하려다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참조항목

, , ,

역참조항목

, , ,

카테고리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