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쓰마번

사쓰마번

[ 薩摩藩 ]

요약 규슈[九州] 남부지역을 지배한 77만 석(石)의 도자마다이묘[外樣大名].
가고시마성

가고시마성

가고시마번[鹿兒島藩]이라고도 한다. 번주[藩主]는 12세기 이후부터 이 지역을 지배해 온 시마즈[島津]로 16세기 말에는 를 거의 통일하여 세력을 떨쳤으나 전국시대 규슈정벌에 나선 [豊臣秀吉]에게 굴복하면서, 영지가 축소되었다. 지리적으로 일본의 남서부에 위치하여 서양세력과의 교류가 빈번하였으며, 대외무역이 활발하였고, (倭寇)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때에는 사천전투 · 등에서 악명을 날렸고, 도공(陶工)을 비롯한 많은 기술자를 포로로 잡아가 일본 도자기 생산에 이용하였다.

1609년 류큐국[琉球國, 현재 오키나와]을 침략하여 정복하였고 그 영토인 아마미[奄美] ·오시마[大島] 지역을 식민지로 편입하였다. 이후 류큐왕정에 개입해 중국과의 무역을 독점하게 되었다. 농촌에는 무사가 거주하였으며, 가도와리[門割]제도를 통해서 농민을 인신적으로 지배하는 등 중세 이래의 지배방식이 지속되었다. 흑사탕을 비롯한 각종 상품의 생산과 유통을 철저히 통제하여 부를 축적해 나갔다. 중국의 아편전쟁과 류큐에서의 개항기운동을 통해 일본 개항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방적(紡績) ·조선(造船) 등 서양산업의 이전에 노력하였다.

개항 후 무리한 배외운동을 자제하고 (幕府) 조정 연합정권을 수립하는 정치운동을 추진하며 조슈번[長州藩]과 주도권을 다투며 정국을 주도하였다. 영국 외교관의 살해를 계기로 1863년 영국과 전쟁을 하였으나 패하고 1864년 막부의 조슈번 정벌 때에는 막부를 지지하였으나 1866년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西鄕隆盛] 등은 조슈번과 동맹을 맺고 조슈번이 막부와 계속 대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1865년부터 나가사키[長崎]역을 장악하고 외국세력과 밀약을 맺어 외자(外資)를 도입, 무기와 선박을 도입하여, 막부와 대항할 무력을 갖추고 주위의 번을 지원하였다. 1868년 초 막부를 무력으로 타도하고 새로운 통일정권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신정부의 요직을 조슈번과 함께 장악하였으나 권력 내부의 부패와 사족(士族) 처우에 대한 불만으로 사이고 등 일부 세력이 사직, 으로 낙향하였으며, 1877년 대규모 반란인 세이난[西南]전쟁을 일으켰으나 실패, 곧 진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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