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안먼

톈안먼

[ 天安門(천안문) ]

요약 중국 베이징[北京]에 있는 청(淸)나라 황성의 남면 정문.
톈안먼

톈안먼

국가 중국
소재지 중국 베이징[北京]
건립기간 1651년

명나라 때인 1417년(영락 15)에 착공되어 1420년(영락 18년)에 완공되었다. 당시에는 지붕에 황색기와를 얹고 처마 귀퉁이가 하늘로 치켜든 패루(牌樓)였으며 이름도 승천문(承天門)이었다. 1457년에 화재로 훼손된 것을 1465년에 재건하면서 정면 폭이 9칸인 문루식(門樓式) 패루로 만들었다. 이 문루식 패루는 1644년 (李自成)이 이끈 농민봉기군이 베이징을 공격할 때 소실되었으며, 1651년에 다시 복구되었다. 이 과정에서 목조 패루에서 성루(城樓)로 증축하고 승천문을 톈안먼[天安門]이라고 변경하였다.  

성루는 수미좌(須彌座), 성대(城臺), 성루(城樓)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며  높이는 33.7m이다. 수미좌는 한백옥(漢白玉)을 다듬어 만들었으며, 높이는1.59m이다. 수미좌와 성루 사이의 성대는 무게 24㎏의 대성전(大城砖)을 쌓은 뒤 겉면에 붉은색 흙을 발랐으며, 높이는 14.6m이다. 성루는 겹처마 헐산식(歇山式) 건축물로 정면 폭은 9칸, 안 길이는 5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9와 5는 황권(皇權)을 상징한다. 지름이 2m인 60개의 붉은색 나무기둥으로 떠받치고 있는데, 60은 '갑자(甲子)'의 뜻으로서 왕조가 끊임없이 계속 순환된다는 상징성을 지닌다.

성루의 앞뒤에는 정교한 능화(菱花) 문창(門窗) 36개가 줄 지어 있다. 천장, 두공(斗拱), 양방(梁枋)에는 중국의 고대 건축물에서 최고 권력을 나타내는 금룡(金龍) 문안을 그려 넣었다. 처마 밑에는 붉은 궁등(宮燈)이 17개 걸려 있다. 성루의 지붕에는 황색 유리기와(琉璃瓦)를 얹어 멀리서 바라보면 눈부시다. 지붕의 용마루 양 켠에는 용(龍)·봉황(鳳)·사자(獅子)·기린(麒麟)·해마(海馬)·천마(天馬)·물고기(魚)·해태(獬豸)·후(犼) 등 아홉 짐승과 신선 한 명이 있다. 성루 네 면의 성대 위에는 한백옥 난간과 낮은 성곽이 둘러져 있다.

성루 성대의 밑에는 문동(門洞;대문에서 집 안에 이르는 지붕이 있는 통로)이 5개 있다. 한 가운데 있는 문동이 제일 크다. 이는 황제가 황궁을 출입할 때 드나드는 통로이다. 성루의 정면과 후면에는 각각 돌 사자 한 쌍과 화표(華表) 한 쌍이 있다. 문 앞의 동쪽에는 숫사자가 있는데 오른발로 공을 가지고 재롱을 피우고 있는 모습으로, 이는 황실의 위엄을 상징한다. 왼쪽은 암사자가 왼발로 아기사자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인데, 이는 황실의 후손이 대대로 번창함을 상징한다.

화표는 한백옥을 조각해 만들었는데, 높이는 10여m에 이르고 무게는 5000㎏이 넘는다. 화표는 그 모양이 돌기둥처럼 생겼으며 구름과 반룡(蟠龍) 문양을 그 속에 조각해 넣었다. 화표 꼭대기에는 원반(圓盤)이 하나 있는데 승로반(承露盤)이라고 부른다. 승로반에는 준수(蹲獸)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이름을 망천후(望天吼)라 부른다. 성루 앞에는 진수이허[金水河]가 흐른다. 진수이허에는 한백옥으로 다듬어진 돌다리인 와이진수이차오[外金水橋]가 있다.

문 앞의 대광장 주위에는 중앙관청이 모여 있고, 국가적 대행사 때에는 반드시 이 문이 사용되었다. 1919년의 5 ·4운동 이래 중국인들의 시위집회에 많이 이용되었고, 1949년의 중국정권 수립식도 여기서 행하여졌으며, 매년 5월 1일 노동절 비롯한 국경일의 의식도 이곳에서 행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문 중앙에 마오쩌둥[毛澤東]의 대형 초상화가 걸렸고, 양옆에는 '중화인민공화국만세(中华人民共和国万岁)'과 '세계인민대단결만세(世界人民大团结万岁)'라고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다. 광장 중앙의 남쪽에는 높이 38m의 화강석으로 된 인민 영웅기념비가 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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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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