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량
[ 柳廷亮 ]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1612년(광해군 4) 고부로 유배되었다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전창군(全昌君)으로 봉해지고, 1628년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올랐으며, 세 차례에 걸쳐 청나라에 다녀온 다음 도총관이 되었다. 글씨로 이름이 높았다.
출생-사망 | 1591 ~ 16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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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전주(全州) |
자 | 자룡(子龍) |
호 | 소한당(素閒堂) |
시호 | 효정(孝靖) |
활동분야 | 정치 |
전주(全州). 자룡(子龍). 소한당(素閒堂). 효정(孝靖). 영경(永慶)의 손자로 1604년( 37) 선조의 딸 정휘옹주(貞徽翁主)와 결혼하여 전창위(全昌尉)에 봉해졌다. 1612년( 4) 유영경 일파가 파(大北派)의 탄핵으로 멸족의 화를 입을 때 고부(古阜)로 유배되었다가 장차 역모가 있으리라는 소문이 퍼져 1619년 다시 기장(機張)으로 이배되었다.
1623년 으로 풀려나 전창군(全昌君)으로 봉해지고, 1628년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올랐으며, 1646년(인조 24), 1651년( 2), 1655년 세 차례에 걸쳐 또는 진향사(進香使)로 나라에 다녀온 다음 이 되었다. 글씨로 이름이 높았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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