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2세

헨리 2세

[ Henry II ]

요약 잉글랜드의 왕(재위 1154∼1189). 프랑스왕 루이 7세와 싸워 프랑스 국토의 서반부를 수중에 넣고 이후 잉글랜드에 상륙, 요지(要地)를 탈취해 21세로 잉글랜드 왕이 되었다.
출생-사망 1133 ~ 1189.7.6
국적/왕조 영국
재위기간 1154년 ~ 1189년
활동분야 정치

프랑스 앙주백작 조르푸아(제프리) 5세(Geoffrey V of Anjou, 1113~1151)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헨리 1세의 딸 마틸다이다. 어렸을 때 잉글랜드에서 교육을 받고, 1144년 로 돌아가 1150년 어머니로부터 노르망디 공령(公領)을 물려받고, 이듬해 아버지가 죽자 앙주백작을 계승하였다. 1152년 프랑스 왕 루이 7세와 이혼한 아키텐 여공(女公) 엘레오노르와 결혼, 푸아투 ·기엔 ·가스코뉴를 영유하고 뒤에 프랑스왕 루이 7세와 싸워서 차지한 브르타뉴를 합쳐서 프랑스 국토의 서반부를 수중에 넣었다. 1153년 잉글랜드에 상륙하여 요지(要地)를 탈취하였고 스티븐왕이 죽자 1154년 21세로 즉위, 잉글랜드 왕이 되었다. 플랜태저넷왕가 출신의 첫 번째 잉글랜드 왕이 되었다.

재정의 정비, 순회재판소의 확충, 배심제도 및 용병(傭兵) ·민병으로 구성된 국왕 직속군대의 창설 등 국내 질서의 확립과 왕권 강화에 힘쓰고, (1171) ·웨일스(1172) ·스코틀랜드(1173)를 정복, 잉글랜드의 국력을 신장시켰다. 교회 대책면에서는 클라렌든 칙령(1166)을 제정하여 교회재판권의 박탈을 꾀하였다. 12세기 후반의 서유럽 군주 가운데서 가장 유력하고 영명한 인물의 한 사람으로 평가되지만, 만년은 프랑스왕 루이 7세와의 프랑스 본토에서의 영토 쟁탈전, 영토상속권을 둘러싼 왕자 리처드와 존의 반란에 직면하여 실의 속에서 죽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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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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