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구

한구

[ 韓構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 기사환국 후 아들이 인현왕후의 복위를 꾀하다가 투옥당하자 이에 연좌되어 유배되었다가, 갑술옥사 후 용서를 받았다. 글씨를 잘 써 왕명으로 그의 자체(字體)를 본떠 8만여 자를 평양에서 동활자로 주조하여 ‘한구자(韓構字)’라 이름붙이고 규장각에 보관하였다.
출생-사망 1636 ~ ?
본관 청주(淸州)
긍세(肯世)
안소당(安素堂)
활동분야 정치

본관 청주(淸州). 자 긍세(肯世). 호 안소당(安素堂). 1657년( 8) 진사를 거쳐 1675년( 1) 증광(增廣)문과에 급제한 뒤 1680년 지평, 이듬해 장령(掌令)에 이어 정언·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1684년 승지에 오르고, 1689년 (己巳換局) 후 아들 중혁(重爀)이 김춘택(金春澤) 등과 공모하여, 의 복위를 꾀하다가 투옥당하자 이에 연좌되어, 유배되었다가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甲戌獄事) 후 용서를 받아 80세 때 (嘉善大夫)에 올랐다.

시문(詩文)에 능하고 (金錫胄)와 깊이 교유하였으나, 뒤에 (少論)에 가담하였다. 특히 글씨를 잘 써 1782년(정조 6) 왕명으로 평안도관찰사 서호수(徐浩修)가 그의 자체(字體)를 본떠 8만여 자를 평양에서 동(銅)활자로 주조하여 ‘한구자(韓構字)’라 이름붙이고 에 보관하였다. 이 활자를 이용하여 간행된 책으로는 《잠곡집(潛谷集)》 《낙당집(樂堂集)》 《동강집(東江集)》 등이 있다.

참조항목

역참조항목

카테고리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