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사자공

하인리히사자공

[ ─獅子公 ]

요약 독일 작센공(公) 겸 바이에른공. 동방을 개척하여 북동 독일에서 위세를 떨쳤다.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이탈리아 정책에 협력한 공으로 황제와 매우 사이가 가까웠으나, 제5회 이탈리아 정복에 수행하기를 거절하자 황제가 재판에 회부, 제국추방 ·영지몰수 등의 형에 처하여 사이가 악화되었다.
원어명 Heinrich der Löwe
출생-사망 1129 ~ 1195.8.6
국적 독일
활동분야 정치

호담한 성격 때문에 사자공(獅子公)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벨프가(家)의 당주(當主)로서 작센공 겸 바이에른공을 상속하였다. 영지(領地)를 경영하는 재간이 뛰어나서 (江) 남쪽 연안의 슬라브계(系) 을 정복하여 영지를 확대하였으며, 발트 연안에 상업도시 뤼벡을 경영하는 등, 동방을 개척하여 북동 독일에서 위세를 떨쳤다. 그 당시에는 그때의 황제 와의 사이가 좋았고, 황제의 정책에 협력한 공으로 바이에른겸령(兼領)의 칙허(勅許)를 얻어낼 정도로 두 사람 사이가 가까웠으나, 나중에는 사이가 악화되어 슈타우펜가(家)와 벨프가(家)가 대(代)를 이어 원수의 관계에 이르도록 그 사이가 벌어졌다.

양자가 대립하게 된 주요 원인은, 사자공이 황제의 제5회 이탈리아 정복에 수행하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이다. 황제는 그에 큰 유감을 품어, 사자공을 재판에 회부하여 제국추방(帝國追放) ·영지몰수(領地沒收) 등의 형에 처하였다. 사자공은 장인인 영국 왕 의 궁전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가 나중에 귀국하여 작센 영지의 일부를 회복하였다. 한때 새 황제 와도 다투었다가 화해하였다. 그의 동방개척(東方開拓)과 도시건설 등에서 보이는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정신은 중세 제후(諸侯)들이 따르지 못할 정도로 탁월한 것이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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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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