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리아누스

하드리아누스

[ Publius Aelius Hadrianus ]

요약 로마제국 황제(재위 117∼138). 오현제(五賢帝)의 한 사람. 브리타니아에는 장성(長城)을 구축(하드리아누스 성벽)하고 게르마니아의 방벽(防壁)을 강화하는 등 방위를 강화하고 국력의 충실에 힘썼다. 제국 제반 제도의 기초를 닦았으며 로마법의 학문연구를 촉진시키고 문예 ·회화 ·산술을 애호하였다.
출생-사망 76.1.24 ~ 138.7.10
국적/왕조 로마제국
재위기간 117년 ∼ 138년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이탈리아 로마

의 번영을 이끌었던 (五賢帝)의 한사람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이베리아 반도 남부지방인 이탈리카에서 출생하였으며 이름은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하드리아누스(Publius Aelius Hadrianus)이다. 나중에 황제가 된 와는 외조카가 되며, 하드리아누스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트라야누스가 후견인이 되어 어린 하드리아누스의 성장을 도왔다. 하드리아누스는 이탈리카를 떠나 10세 때부터 로마에서 중등교육을 받았다. 로마에서 행정직을 맡았다가 로마군단에 들어가 장교가 되었으며 도나우 강변 방위에 배속되어 근무하였다.

황제가 암살되고 가 황제가 사망하는 정치적 격변기에 대대장으로 근무했다. 대부인 트라야누스가 황제로 즉위하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서기 101년 로마제국 회계감사관으로 선출되었으며 (현재 루마니아)전쟁에 참전하여 군단의 지휘를 맡아 전공을 세웠다. 이후 법무관에 선출되었으며 속주의 총독으로 부임하였다. 32세에 집정관에 당선되었다. 서기 113년 트라야누스의 원정 때는 시리아 속주의 총독으로 있었는데, 동방의 최대 거점도시였던 안티오키아에 머물며 로마군의 병참을 맡았다. 트라야누스가 갑자기 중병을 얻어 후계자로 그를 양자로 지명하고 사망하자, 현지에서 황제로 즉위하였다. 선제(先帝)의 대외 적극정책에서 수세(守勢)로 전환하여, 방위를 강화하는 한편, 국력의 충실에 힘썼다.

치세의 초기에는 선제 트라야누스의 충복이었던 장군들의 반발과 암살의 위협이 있자 이들 장수들을 모두 숙청하였다. 하지만 이때문에 그의 인기는 떨어졌고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속주(屬州)인 유대교의 반란과 반란, 북아프리아카 마우리타니아에서 일어난 반란 등을 진압하여 속주민 통치의 안정화를 이루었다. 하드리아누스는 로마제국의 속주국들을 순행(巡行)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브리타니아에는 장성(長城)을 구축(하드리아누스 성벽), 의 방벽(防壁)을 강화하였으며, 파르티아와 화의를 체결, 아르메니아를 보호국 지위로 되돌려놓았다. 또한, 속주 여러 도시의 건설 ·육성, 공공시설의 충실에도 진력하고, 아테네와 로마에 각종 신전을 건조하였다.

이렇듯 속주통치조직, 제국 행정제도, 관료제도, 군사제도의 정비에 힘써, 이후 제국 제반 제도의 기초를 닦았다. 또한, 로마법의 학문연구도 촉진시키고, 문예 ·회화 ·산술을 애호하고, 학자들을 우대하였다. 안토니누스피우스를 양자로 삼았는데, 사후에는 그에 의하여 신격화(神格化)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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