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피카비아

프랜시스 피카비아

[ Francis Picabia ]

요약 프랑스의 화가이며 시인, 편집인. 인상주의로 시작하여 입체파, 황금 분할파, 오르피즘,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까지 20세기 미술 전반에 걸쳐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모든 예술적 관습을 타파한 다다이즘 작가로서 당시 예술계에 획기적인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출생-사망 1879. 1. 22 ~ 1953. 11. 30
본명 프랑수아 마리 마르티네즈 피카비아(François Marie Martinez Picabia)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회화, 문학, 출판
출생지 프랑스 파리
주요작품 《우드니 Udnie》(1913), 《지상에서 매우 보기 드문 그림 Very Rare Picture Upon the Earth》(1915), 《여기, 이곳이 스티글리츠다 Ici, C'est Ici Stieglitz》(1915), 《빠르게 회전하는 기계 Machine Turn Quickly》(1916~1918)

프랜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는 1879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와 국립장식미술학교에서 수학했으며, 1905년 인상주의 화풍으로 구성된 첫 개인전을 가졌다. 그는 일찍이 (Alfred Sisley)의 풍경화에 영향을 받아 인상주의적인 작품을 그렸으나, 점차 야수파와 입체주의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피카비아는 1911년 입체주의의 한 분파인 황금 분할파(섹시옹 도르)에 참여했다. 그리고 퓌토 그룹을 통해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과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등을 만나 이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12년에는 으로 이행하여 추상에 가까울 정도로 형태를 분해해 특유의 반추상적인 스타일을 창조했다. 피카비아는 이를 통해서 구체적인 형상 묘사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음악의 화음이나 춤의 율동 같은 느낌들을 표현하고자 했다.

1913년 피카비아는 뉴욕에서 열린 아모리 쇼에 추상 작품들을 출품하여 호평을 얻었다. 이 전시를 통해 그는 사진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를 비롯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교류할 수 있었으며, 이후 뒤샹, 만 레이(Man Ray)와 함께 뉴욕 다다이즘의 토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1915년에는 기계를 모티프로 한 회화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국제적인 다다이즘 운동에 깊이 관여했다. 1916년 바르셀로나로 옮겨 전위잡지 《391》을 창간하고, 1918년에는 트리스탄 차라(Tristan Tzara)와 만나 취리히 다다이즘을, 1919년에는 파리에서 다다이즘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후 왕성한 실험을 끝마친 다다의 구성요소들은 새롭게 떠오른 운동에 흡수되고 있었다. 결국 피카비아는 1921년 다다이즘과의 관계를 끊고, (André Breton)이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한 것과 때를 같이 하여 1924년 초현실주의 운동에 가담했다. 그는 잠시 전통적 구상회화로 회귀하기도 했으며, 1930년대에는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과 친한 친구로 지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피카비아는 고향인 파리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그는 다시 추상화를 그리고 시를 쓰다가 1953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작품에는 《우드니 Udnie》(1913), 《나는 추억 속에서 나의 친애하는 우드니를 다시 만난다 I See Again in Memory My Dear Udnie》(1914), 《지상에서 매우 보기 드문 그림 Very Rare Picture Upon the Earth》(1915), 《여기, 이곳이 스티글리츠다 Ici, C'est Ici Stieglitz》(1915), 《빠르게 회전하는 기계 Machine Turn Quickly》(1916~1918) 등이 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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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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