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로

피가로

[ Le Figaro ]

요약 프랑스 파리에서 발행되는 조간신문.
르 피가로 반면

르 피가로 반면

국적 프랑스
분야 조간신문
발행년도 1826년
발행주기 일간
발행부수 43만 2225부(2000)

세계 10대 신문 중 하나로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 된 보수계 신문이다. 프랑스의 극작가 보마르셰의 《 Le Barbier de Seville》의 이발사 피가로의 이름에서 연유한 것으로, 예술에 관한 냉소적이고도 재치있는 만평 신문으로 1826년 1월 15일 창간되었다. 처음에는 의 풍자적 예술평론 주간지였는데, 1854년에 J.C.빌매상이 편집장이 되면서 정치 보도지로서의 기반을 다지게 되었으며, 1866년부터 일간지가 되었다.

E.졸라, , 소(小) 뒤마 등 일류 작가를 기용하고, 유명인사와의 대담 방식을 처음 도입하면서 정치 논설 중심의 일간지가 되었다. 1894년에는 프랑스 국론을 양분하는 사회적·정치적 대사건이던 A. 때 드레퓌스를 옹호하여 프랑스 군부와 대결하였으며, 제1차 세계대전 전야에는 반전친독(反戰親獨)을 주장한 카요 재무장관을 공격함으로써 칼메트 사장이 카요 부인에게 피살되었다.

1922년 화장품 제조업자 프랑수아 코티가 사주가 되면서 그의 정치적 야심을 선전하는 도구로 전락했으나, 1934년에 코티가 죽고 반나치 명편집인으로 알려진 피에르 브리송이 편집장으로 부임하면서 프랑스 유력지로서의 옛 명성을 회복하였다. 1942년 나치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 비시 정권의 검열을 거부, 자발적으로 휴간했고, 1944년 8월 23일 프랑스 해방군의 파리 입성 전날에 복간하였다.

전후 뛰어난 국제관계 보도에 주력하면서도 의학 및 자연과학 분야, 오락과 예술계, 문학계 등에도 지면을 할애했다. 전후에는 코티 미망인과 브리슨 이사장을 정점으로 하는 경영이사진 사이에 소유권 분쟁이 벌어졌으나, 1970년 사주측의 퇴진으로 일단락되었다. 그후 신문재벌 로베르 에르상이 매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발행부수는 2000년 현재 43만 2225부이며, 《르 몽드》지와 더불어 세계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참조항목

,

역참조항목

, ,

카테고리

  • > > >
  • > > >

관련이미지

르 피가로

르 피가로 프랑스 파리에서 발행되는 조간신문으로 세계 10대 신문 중 하나이다. 출처: doop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