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 Sergei Sergeevich Prokofiev ]

요약 소련의 작곡가. 러시아혁명을 계기로 1918년 미국에 망명, 오페라 《3개의 오렌지에의 사랑》 등을 발표한 후 유럽으로 건너가《피아노협주곡 제3번》등 많은 곡을 작곡하였다. 소련의 여러 차례에 걸친 귀국 종용으로 조국으로 돌아가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알렉산드르 넵스키》, 《교향곡 제5번》 등을 완성하였다.
출생-사망 1891.4.23 ~ 1953.3.5

예카테리노현 손초프카(현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출생. 아버지는 유대인 대지주이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음악과 친숙해져 5세 때 《인도풍(風)의 갤럽》을, 9세 때 피아노반주가 딸린 오페라 《거인》을 작곡하였다.

1904년 페테르부르크음악원에 입학, A.K.리아도프, A.N.체레프닌, N.A.림스키코르사코프 등에게 사사하여 작곡·음악이론·피아노·지휘 등을 배우고 1914년에 졸업하였다. 이 사이에도 《제1피아노》을 비롯하여 많은 곡을 작곡하였으며 또 1908년에는 ‘현대음악의 저녁’이라는 모임에 참여하여 이때부터 유럽 근대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런던에서 S.P.디아길레프에게 발레음악 작곡을 권유받아 귀국 후 《알라와 롤리》를 작곡하였으나 이 작품은 상연되지 않은 채 《스키타이모음곡》으로 개작되었다. 을 계기로 1918년 미국에 망명, 오페라 《3개의 오렌지에의 사랑》 등을 발표한 다음 유럽으로 건너가 유명한 《피아노협주곡 제3번》을 포함한 많은 곡을 작곡하였다.

1933년 소련의 여러 차례에 걸친 귀국 종용으로 조국으로 돌아가 당국의 비판을 받아가면서도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알렉산드르 넵스키》, 《교향곡 제5번》 등을 완성하고, 스탈린의 사망과 같은 해에 죽었다. 작풍은 초기의 원시적인 격렬함에서 점차 고전적 경향으로 이행하여 감미롭고 간소한 스타일을 취하였다. 8개의 오페라, 7개의 발레, 각 10곡의 교향곡과 협주곡 외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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