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봄

프라하의 봄

요약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자유화운동이다. 이 운동을 막기 위하여 불법침략한 소련군의 군사개입사건을 포함하여 '체코사태'라고도 한다.

"프라하의 봄"광장

1956년 소련 내에서 스탈린 격하운동이 있은 후에도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스탈린주의자 노보트니 정권의 보수정책이 계속되었고 체코슬로바키아 국민들의 민주 ·자유화의 열망이 점차 고조되어 갔으나, 노보트니 정권은 이를 외면한 채 소련만을 추종하였다.

1960년대 이에 반발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지식층이 중심이 되어 민주 ·자유화의 실현을 위한 조직적인 운동을 펴기 시작하였다. 이 물결에 밀려 마침내, 1968년 1월 노보트니 당 제1서기가 물러나고, 개혁파의 둡체크가 당 제1서기를, 체르니크가 수상을, 온건파 스보보다가 대통령직을 각각 맡았다.

이들 개혁파는 1968년 4월 체코슬로바키아공산당 중앙위 총회에서 ‘인간의 얼굴을 가진 ’ 즉 민주 ·자유화노선을 제창하는 강령을 채택하였다. 그 내용은 재판의 독립, 견고한 의회제도의 확립, 사전검열제의 폐지, 민주적인 선거법제도의 창설,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보장, 국외여행 및 이주의 자유보장, 경찰정치의 부활저지, 경제계획의 추진,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동등한 권리에서의 연방제로의 이행, 자주독립에 대한 대외정책 추진 등이다. 따라서 사실상 검열제가 폐지되고 많은 정당 ·정치단체가 부활되었으며, 의회는 활발한 논의와 비판의 광장이 되었다.

이러한 자유화를 위한 정책적 변화가 있자 온 국민은 ‘프라하의 봄’이라 하여 공산체제로부터의 탈바꿈을 환영하였다. 그러나 소련은 이러한 체코사태가 동유럽 공산국가들에게 미칠 영향을 우려하여, 이 체제변화를 ‘마르크스 ·레닌주의로부터의 이탈’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불법으로 무력침공을 감행하였다.

1968년 8월 20일 소련군을 비롯한 5개국군 약 20만 명을 동원하여 침공함으로써, 이 자유화운동을 일시에 저지하고, 개혁파 주도자들을 숙청하였다. 1969년 4월 소련은 둡체크를 강제 해임시키고 후임 서기장에 를 임명하였으며, 개혁파를 추종한 50여만 명의 당원을 제명 또는 숙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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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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