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거가
[ Fugger family ]
- 요약
남(南)독일의 상업도시 아우크스부르크를 거점으로 하여 근대 초기에 번영하던 호상(豪商).
창업주 한스는 의 그라벤 마을에서 로 이주하였다. 처음에는
모직물 ·바르켄트직(麻와 綿의 交織)의 거래로 재산을 모았으나, 나중에는
동양산품(東洋産品)의 거래, 금융업, 은 ·구리 ·수은 등의 광산업(광산은 領主에
대한 대여금의 담보물로서 보유)까지도 하였다. 그의 막내아들 야콥(1459∼1525)
때가 번영의 절정기로서 거래 범위가 전유럽에 이르러, 황제 막시밀리안 1세, 카를
5세를 비롯하여 ·제후에게 돈을 빌려 주었는데, 특히 카를 5세가 푸거가에서
빌린 돈을 선거비용으로 써서 황제에 당선된 일, 의 대주교가 푸거가에서 빌린
차용금을 변제하기 위해 속죄부(贖罪符) 판매를 강행하여 루터의 비난을 초래한 일
등은 유명하다.
한편, 야콥이 구빈시설(救貧施設)인 푸게라이(일종의 아파트)를 건설한 일도
유명한데, 푸게라이는 아우크스부르크에 지금도 남아 있다. 푸거가는 전성시대에
전유럽에 지점망(支店網)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조직을 통하여 수집한 정치 ·경제
정보(1568∼1608)는 ‘푸거시보(時報)’라고 불려, 근대 초기의 좋은 사료(史料)로서
빈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푸거가는 16세기 말 이후 쇠퇴하였다.
참조항목
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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