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클랜드전쟁

포클랜드전쟁

[ Falkland Islands War ]

요약 남아메리카대륙의 동남단, 아르헨티나의 대륙부에서 약 500km 떨어진 남대서양의 소도인 포클랜드의 영유권을 둘러싼 영국·아르헨티나 간의 분쟁.

실질적으로는 1833년 이후 영국령인 포클랜드에 대하여, 1816년 에스파냐로부터 독립시 그 영유권도 계승한 것으로 주장하는 아르헨티나(에스파냐어로는 Malvinas제도로 불리며, 에서는 흔히 아르헨티나 영토로 생각하고 있다)가 1982년 4월 2일 무력점령을 감행한 데서 발단되었다. 이에 대하여 영국은 근해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으며, 또 대륙에의 전진기지로서의 포클랜드 방위를 위하여 급거 기동부대를 파견, 4월 26일에는 포클랜드제도의 동남쪽 1,500km에 있는 남조지아섬을 탈환하였다. 5월 20일 유엔 사무총장의 조정교섭이 실패로 돌아가자 영국군은 포클랜드에 상륙, 75일간의 격전 끝에 6월 14일 아르헨티나군의 항복으로 전쟁을 종결시켰다. 그러나 이 전쟁은 ‘포클랜드 휴전과 아르헨티나군의 철수에 양측이 합의하였다’고 항복이라는 말을 빼고 발표된 아르헨티나측 성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아무런 진전도 보지 못한 채 원점으로 되돌아갔으며, 다시 유엔으로 넘겨진 포클랜드 영유권 문제의 타결에는 어려움이 많다.

한편, 이 전쟁이 남긴 교훈으로는 첫째, 무기현대화에 따른 전비(戰費)의 팽창이다. 영국은 사상자 452명과 항공기 25대, 함정 13척을 잃었으며 전비 15억 달러를 소비하였는데, 국위선양 등 작은 성과에 비하여 커다란 경제적 부담을 안게 되었다. 사상자 630명과 항공기 94대, 함정 11척을 잃은 GNP 600억 달러의 아르헨티나는 거의 국력을 총동원하는 모험으로 영국보다 더욱 많은 전비를 염출하여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몰렸다. 둘째는 이 전쟁을 통하여 드러난 유엔과 미국의 무능이다.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개전 후에도 협상의 문호를 계속 개방하고 있었으나 유엔과 미국은 교전당사국의 이해조정에 실패하였으며, 특히 미국은 조급히 영국을 지원하고 나섬으로써 라틴아메리카 제국의 반미감정만 고조시켰을 뿐만 아니라, 문제해결에 전혀 기여하지 못함으로써 대미신뢰에 커다란 문제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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