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강렬

편강렬

[ 片康烈 ]

요약 한말의 의병. 을사늑약 체결 후 영남지방 의병장 이강년의 휘하에 들어가 선봉장이 되었다.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암살을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3년간 복역하였으며 출옥 후 3·1운동이 일어나자 황해도 일대의 독립운동을 지휘하였다. 이후 만주로 망명, 의성단(義成團)을 조직, 일본 적십자병원을 습격하기도 했다.
출생-사망 1892.2.28 ~ 1929.1.16
애사(愛史)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황해도 연백(延白)
주요수상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호 애사(愛史). 1892년 2월 28일 황해도 연백(延白)에서 출생하였다. 14세 때 (乙巳勒約)이 체결되자 을 하다 말고 16세 때 장 (李康imagefont)의 휘하에 들어가 선봉장이 되었다. 1907년 전국의 의병이 양주(楊州)에 집결, 서울로 진격할 때 부상을 입고 귀향하였다가 1910년 평양 숭실(崇實)학교에 입학, 학우들과 [寺內正毅]의 암살을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3년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 3·1운동이 일어나자 구월산 주비대(籌備隊)를 조직, 황해도 일대의 독립운동을 지휘하고 다시 체포되어 1년 6개월간 복역하였다.

그후 만주로 , 화이더현[懷德縣]에서 (梁起鐸) 등과 의성단(義成團)을 조직, 단장이 되고 창춘[長春]의 일본 적십자병원을 습격한 데 이어 7명의 부하를 이끌고 일본군 중대병력과 펑톈[奉天]에서 시가전을 감행하였다. 1925년 산재하는 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하기 위해 각지를 순방하던 중 [吟爾濱]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그후 신의주에서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혹독한 고문으로 발병하여 보석되었으나 만주 안둥[安東]병원에서 순국하였다. 1962년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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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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