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사인 미르자 바이카라

후사인 미르자 바이카라

[ Husayn Mirza Bayqara ]

요약 헤라트(Herat)를 중심으로 페르시아 지역을 통치한 티무르 왕조의 술탄으로, 1457년경에 구르한의 수도 아스타라바드를 빼앗고, 아부 사이드의 주권하에 왕위에 올랐다. 이듬해 아부 사이드에 의해 코레즘으로 쫓겨났으나, 후에 구르한 전역(全域) 및 마잔데란을 탈환, 아부 사이드가 죽은 후 헤라트를 병합하고 다시 왕위에 올랐다.
원어명 Husain Bāiqarā
출생-사망 1438 ~ 1506.5.4
국적 페르시아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애인의 모임》

본명은 Husain b. Mansūr b. Bāiqarā. 티무르의 손자 중 만수르(Mansur) 술탄의 아들로서, 7-8세 무렵 부친이 사망하자, 를 통치하고 있던 친척인 술탄 바부르(Babur Ibn-Baysunkur)의 보호를 받았다. 1457년 바부르가 사망하자 사마르칸트를 통치하고 있던 술탄 아부 사이드(Abu Said)가 헤라트를 공격했을 때 잡혀서 감금되었다. 그러나 후세인은 쿠라산(Khurasan) 지역으로 도망했으며, 세력을 키워 자신만의 영토를 갖고자 노력했다.

그는 1457년경에 흑양왕조(Black Sheep Turkmen)를 공격하여 구르한(Gurgan 혹은 Gorgan) 지역의 수도 아스타라바드를 빼앗고, 이어서 카스피해 연안의 마잔다란(Mazandaran)까지 점령했다. 근거지를 확보한 후세인 바이카라는 1458년에 스스로 헤라트의 통치자임을 선언했으나, 1459년에 아부 사이드와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카와리즘(Khawarazm) 지역으로 물러났다. 그 후 1460년에 트랜스옥사니아에서 아부 사이드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으며, 1464년부터 반란의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그는 아부 사이드에 대항하기 위해 의 도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1469년 아부 사이드가 사망하자, 그 사촌조카 술탄 야디가르 무함마드(Yadigar Muhammad)가 군대를 수습하여 영토를 통치하고자 했으나, 결국 1470년에 후세인 바이카라에게 왕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술탄 야디가르의 형제 술탄 아흐마드(Ahmad)가 사마르칸트로부터 원군을 보내왔으나, 헤라트는 이미 후세인 바이카라의 세력권하에 있었다. 후세인 바이카르는 1470년 7월 7일에 공식적으로 헤라트의 통치자가 되었으며, 술탄 야디가르는 유배되었다. 그 후 사마르칸트가 내부 분열로 쇠락했던 반면, 후세인 바이카라가 통치하는 헤라트는 점차 영토를 확장했으며, 국내적으로도 번영을 누렸다. 후세인 바이카라는 문학 ·예술을 특히 애호했으며, 그 스스로가 문인이기도 했다. 저서에 성인(聖人)·왕족의 전기 《애인의 모임 Majalisu’l-‘Ushshāq》이 있다.

참조항목

카테고리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