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 유의

황보 유의

[ 皇甫兪義 ]

요약 고려시대의 문신. 천추태후(千秋太后)와 사통한 김치양이 그 사생아를 왕위에 앉히려는 음모를 꾸미자 낭장(郞將) 문연(文演) 등과 함께 대량원군(大良院君) 순(詢:顯宗)을 맞아들여 즉위하게 하였다. 이후 어사대부에 올라 왕가도(王可道)와 함께 개경의 나성(羅城)을 축조하였다.
출생-사망 ? ~ 1042
활동분야 정치

1009년(목종 12) 천추태후(千秋太后)와 사통한 (金致陽)이 그 사생아를 왕위에 앉히려는 음모를 꾸미자 선휘판관(宣徽判官)으로서 (蔡忠順) ·최항(崔沆)의 천거를 받아 낭장(郞將) 문연(文演) 등과 함께 삼각산 신혈사(神穴寺)에 가서 대량원군(大良院君) 순(詢:顯宗)을 맞아들여 즉위하게 하였다.

그 후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 ·이부낭중(吏部郞中) ·내사사인(內史舍人)을 역임, 1014년(현종 5) 중추원 일직원(日直員)으로서 중추원사 장연우(張延祐)와 함께 왕에게 주청하여 경군(京軍)의 (永業田)을 거두어 관리의 봉급에 충당했다가 상장군(上將軍) 김훈(金訓) 등의 반발로 유배되었다.

1016년 김훈 일파가 사형되자 급사중(給事中)에 등용, 1026년 어사대부에 올라 참지정사(參知政事) 왕가도(王可道)와 함께 개경(開京)의 나성(羅城)을 축조하였으며, 1031년 중추원사(中樞院使)가 되었다. 이듬해 이부상서 ·참지정사, 1034년(덕종 3) 내사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內史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 1036년(정종 2) 문하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에 이르러 치사(致仕)하였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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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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