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처후

홍처후

[ 洪處厚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정언(正言)으로 있으면서 최명길을 탄핵하다가 좌천되었다. 이후 동부승지(同副承旨), 전라도관찰사, 우승지(右承旨)를 거쳐 함경도관찰사가 되고, 경기도관찰사, 공조참판에 이르렀다.
출생-사망 1599 ~ 1673
본관 남양(南陽)
덕재(德載)
성암(醒菴)
시호 충장(忠莊)
활동분야 정치

본관 남양(南陽). 자 덕재(德載). 호 성암(醒菴). 시호 충장(忠莊). 1616년(광해군 8)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음보(蔭補)로 참봉이 되었다. 이어 세자익위사 세마(世子翊衛司洗馬)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등에 임명되었으나 사퇴, 1629년(인조 7)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가 되고, 1633년 정언(正言)으로 있으면서 (崔鳴吉)을 탄핵하다가 제천현감으로 좌천되었다.

1652년(효종 3) 수찬, 이듬해 교리, 1655년 의주부윤(義州府尹)에 오르고, 1659년(현종 즉위) 경상도관찰사, 1661년 호조참의, 이듬해 (同副承旨)를 거쳐, 병조 참지 ·참의를 지내고, 1665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판결사(判決事) ·전라도관찰사 ·우승지(右承旨)를 거쳐 1669년 함경도관찰사가 되고, 1673년(현종 14) 경기도관찰사 ·공조참판에 이르렀다. 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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