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전서

홍재전서

[ 弘齋全書 ]

요약 조선 후기 정조의 문집.
구분 문집, 활자본
저자 정조
시대 조선 후기(1814)

활자본. 184권 100책. · 도서. 1799년(정조 23) 이만수(李晩秀) 등이 편집하기 시작하여 총 190편으로 정리하였으며, 정조 사후에 말년의 저술들을 덧붙여 (沈象奎) 등이 1801년에 재편집하였다. 1814년에 간행되었다. 국왕의 저술은 사후에 신하들이 편집하여 전대로부터 내려오는 《(列聖御製)》에 덧붙이는 것이 관례였으며 정조에 대해서도 후에 어제집이 편찬되었다. 그러나 뛰어난 정치가인 동시에 당대 최고의 학자로서 다방면에 걸친 문화사업을 추진하고 방대한 저술을 남긴 정조는 사후에 편찬될 《열성어제》에 만족하지 않고 국왕으로서는 전례가 없는 문집 편집을 지시하였다. 정치적으로, 정조의 학문과 저술은 학문적 권위를 바탕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산림(山林)에 의해 국왕권이 제약당하는 일을 막기 위하여 스스로 절대적인 학문적 권위를 세운다는 특수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후대의 국왕들과 대리청정한 효명세자(孝明世子)에 대해서도 대개 개인 문집이 열성어제와 별도로 편집되었다.

앞에는 <춘저록(春邸錄)>이라는 표제 아래 세손으로 있을 때의 시와 편지 및 기타 형식의 글들을 모았다. 첫머리가 해[日]와 달[月]이라는 제목의 시로 시작되는 것이 상징적이다. 권5부터는 시를, 권8 이후로는 여러 종류의 책과 저술에 붙인 서문들인 <서인(序引)>을 수록하였다. 권15부터는 기(記)를 비롯하여 비문 ·지(誌) ·행장(行狀) ·제문(祭文)이, 권26부터는 (綸音) ·교서(敎書)에서 과거 문제인 책문(策問)에 이르기까지 국왕으로서 내린 여러 형식의 명령이나 저술이, 권53부터는 설(說) ·찬(贊) ·명(銘) ·잡저(雜著) 등이 수록되었다. 권69~119는 정조가 유학의 여러 경전과 논점에 대해 신하들과 토론한 내용이 <경사강의(經史講義)>라는 표제 아래 실려 있고, 권120 이하는 경학에 대한 저술이나 토론 기록인 <추서춘기(鄒書春記)> <노론하전(魯論夏箋)> <증전추록(曾傳秋錄)> <유의평례(類義評例)> <고식(故寔)> 등을 수록하였다. 권135 이하는 전국의 중죄인들에 대한 판례 모음인 <(審理錄)>, 권161 이하는 문학 ·국정 ·인물 ·훈어(訓語)라는 소표제로 구분된 정조의 어록으로서 규장각 관원들이 기록한 <일득록(日得錄)>이, 권179 이하는 정조가 직접 짓거나 편찬을 주도한 서책들에 대한 해제집인 <군서표기(群書標記)>가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 수록된 글이 모두 정조의 개인 저술은 아니어서, <경사강의>와 같은 경우 신하들이 응답한 내용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심리록>은 해당 관서의 기록에 국왕이 최종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 모두가 정조의 학문과 정책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참조항목

, ,

역참조항목

, , , , ,

카테고리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