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하

홍명하

[ 洪命夏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암행어사가 되어 부정척결로 이름을 떨쳤으며, 예조 ·병조의 판서를 거쳐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고, 효종을 도와 북벌(北伐) 계획을 적극 추진하였다.
출생-사망 1608 ~ 1668
본관 남양(南陽)
대이(大而)
기천(沂川)
시호 문간(文簡)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기천집》

본관 남양(南陽). 자 대이(大而). 호 기천(沂川). 시호 문간(文簡). 1630년(인조 8) 생원이 되고, 164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검열을 거쳐 1646년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한 뒤 대교(奎章閣待敎) ·정언 ·교리를 역임하였다. 1648년 부수찬 ·헌납을 지낸 뒤 이조좌랑으로 가 되어 부정척결(不正剔抉)로 이름을 떨쳤으며, 1650년 이조정랑을 거쳐 1652년 동부승지에 승진하고, 이듬해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이 되었다.

이어 대사간으로 사은부사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온 뒤 이조와 예조의 참판 ·부제학 · ·형조판서를 역임하고, 약방제조(藥房提調)로 1659년 효종이 죽자 삭직(削職)되었다. 이어 복직, 예조 ·병조의 판서를 거쳐 1663년(현종 4) 이 되고, 이듬해 사은 겸 진주사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와서 1665년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性理學)에 조예가 깊고, 효종을 도와 북벌(北伐) 계획을 적극 추진하였고, 글씨를 잘 썼다. 여주의 기천서원에 배향되었으며, 문집으로 《기천집》을 남겼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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