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논쟁

통화논쟁

[ 通貨論爭 ]

요약 1830∼1840년에 영국에서 통화발행 문제를 둘러싸고 지금논쟁(地金論爭)의 뒤를 이어 일어났던 논쟁.

당시 에서는 1836년과 1839년에 이 일어나, 잉글랜드은 여러 차례 태환(兌換)사태를 당했으며, 심지어 태환정지 위기에까지 몰렸다. 그 때까지 과 지방은행에는 통화발행권이 부여되어 있었고, 발행고와 태환은 은행의 자유재량에 맡겨져 있었으나 지금논쟁의 뒤를 이어 그러한 통화발행문제를 놓고 두 가지 의견이 대립하였다. 즉, 반(反)지금주의의 견해를 계승하는 은행주의(banking principle)와, 지금주의의 견해를 이어받은 통화주의(currency principle)의 대립이었다.

통화주의
지금논쟁 때의 D.리카도의 화폐론을 계승한 S.J.L.오버스톤, G.W.노먼, R.토렌스, R.필 등이 대표자들로서 이들은 은행권의 과잉발행이 공황의 원인이므로 발행권을 잉글랜드은행에 집중시켜 발행량을 동은행의 금보유량과 똑같이 증감시키자는 주장이다.

완전한 통화는 정화(正貨)이며, 어음은 화폐와 다르다. 정화만이 유통하고 있는 경우에는 금의 유출입으로 통화량이 자동조절되며, 물가도 이에 따라 올랐다가 국제적으로 자동조정된다. 그러나 은행권도 함께 유통하는 경우에는 금의 대외유출이 있어도 은행이 은행권을 증발하기 때문에 자동조절이 불가능하여, 물가변동이 일어나고 공황을 초래한다. 따라서 은행권의 발행고는 정화발행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증감에 따라 증감될 필요가 있다.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통화주의자는 금의 유출입에 따라 은행권의 발행을 조절하는 발권제도(發券制度)로 제도개혁을 하라고 주장하였다.

은행주의
통화주의에 반대한 은행주의의 대표자인 T.투크, J.풀라턴, J.S.밀 등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은행권은 생산물의 거래량에 따라 발행되며, 생산물이 유통시장에서 없어질 때 발권은행으로 환류(還流)한다. 따라서 은행권은 발권은행이 멋대로 발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수요에 따라 공급되므로 과부족은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물가는 화폐수량에 의해서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화폐수량이 물가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며, 은행권의 발행은 정화준비와는 관계없이 은행의 자유재량에 맡겨야 한다.

이 같은 주장은 봉쇄적 국내경제를 중심으로 한 통화공급이론이다. 은행주의는 통화와 자본의 구별에 있어서 몇 가지 오류를 범했으나, 신용이론에 관해서는 공적을 남겼다. 이 논쟁은 정책적으로는 통화주의 필은행조례(Peel’s Bank Act)로 구체화되었으나, 1847년 이후에 몇 차례의 공황을 맞자 이 조례의 발권제한이 정지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논쟁이 다시 일었다. 그 후에도 이 두 가지 주장은 금융론에서 끊임없이 재현되었다. 1950년대 이후의 머니터리즘과 케인스주의 논쟁도 통화논쟁의 일환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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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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